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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것들의 역사

선원의 기록에서 예술의 캔버스로, 문신(타투)은 어떻게 주류가 되었나

by handago-blog 2025. 8. 27.

폴리네시아 섬으로 떠나는 여행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화면 속 한 장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온몸을 뒤덮은 정교하고 기하학적인 문양의 문신(Tattoo). 그것은 제가 알던 작은 패션 타투와는 차원이 다른, 한 사람의 일생과 정체성이 고스란히 새겨진 살아있는 역사책처럼 보였습니다.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한때 서양 사회에서 선원이나 범죄자의 낙인처럼 여겨졌던 이 고대의 풍습이, 어떻게 오늘날에는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가장 강력한 예술의 한 형태로 자리 잡게 되었을까요?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 저는 18세기 태평양을 탐험했던 제임스 쿡 선장(Captain James Cook)의 항해 일지에 대한 기록들을 다시 찾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모든 변화의 시작이, 바로 그의 배에 타고 있던 선원들의 경이로운 눈빛에서 시작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선원의 기록에서 예술의 캔버스로, 문신(타투)

목차

  1. 고대의 신성한 표식, '타타우'의 세계
  2. 캡틴 쿡의 항해, 서구 사회와의 조우
  3. 하위문화의 낙인, 선원과 범죄자의 상징
  4. 반항에서 예술로, 주류가 된 캔버스

1. 고대의 신성한 표식, '타타우'의 세계

쿡 선장의 항해 일지를 들여다보기 전, 저는 먼저 문신의 고대사를 살펴보았습니다. 놀랍게도 문신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예술 행위 중 하나였습니다. 특히 폴리네시아 문화권에서 문신, 즉 '타타우(Tatau)'는 한 개인의 모든 것을 말해주는 신성한 언어였습니다. '타타우'는 '두드린다'는 뜻으로, 뾰족한 도구로 피부에 상처를 내고 색소를 넣어 문양을 새기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의미합니다. 이 고통을 견뎌낸다는 것은 곧 공동체의 일원으로 다시 태어나는 통과 의례였습니다. 문신은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 가문의 혈통, 전사로서의 업적, 그리고 영적인 보호를 상징했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현대 사회의 문신이 주로 '개인의 선택'으로 여겨지는 것과 달리, 고대의 문신은 '공동체와의 약속'이자 '자신의 역할에 대한 증명'이었다는 사실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반면 당시 유럽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신이 주신 몸을 훼손하는 행위라 하여 문신을 야만적인 이교도의 풍습으로 여기며 엄격히 금기시했습니다.

2. 캡틴 쿡의 항해, 서구 사회와의 조우

수천 년간 각자의 세계에 머물던 두 문화가 충돌한 것은 18세기 후반, 영국의 위대한 탐험가 제임스 쿡 선장이 이끄는 탐험대가 타히티와 뉴질랜드 등 폴리네시아에 도착하면서부터입니다. 쿡 선장과 그의 선원들은 온몸을 뒤덮은 원주민들의 정교한 '타타우'를 보고 엄청난 충격과 경이로움을 느꼈습니다. 쿡 선장은 자신의 항해 일지에 이 신비로운 풍습에 대해 상세히 기록했고, 이때 '타타우'라는 단어가 영어식으로 변형되어 '타투(Tattoo)'라는 이름으로 처음 유럽에 소개되었습니다. 특히 오랜 항해에 지쳐 있던 선원들은 이국적인 섬에서 겪은 모험의 증표이자, 원주민들의 강인함을 동경하는 의미로 자신들의 몸에 타투를 새기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며, 거대한 역사의 변화가 때로는 이처럼 이름 없는 개인들의 순수한 호기심과 동경에서 시작될 수 있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꼈습니다. 이 선원들이 유럽의 항구 도시로 돌아왔을 때, 그들의 몸에 새겨진 낯선 그림들은 곧 다가올 새로운 문화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3. 하위문화의 낙인, 선원과 범죄자의 상징

쿡 선장의 선원들이 가져온 타투는 곧바로 유럽 사회의 주류 문화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오히려 수십 년간, 타투는 사회의 경계선에 있는 사람들의 '낙인'이자 '상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타투는 주로 거친 바다를 떠도는 선원들, 사회의 규범에서 벗어난 서커스 단원들, 그리고 감옥에서 서로를 식별하기 위해 문신을 새겼던 범죄자들과 같은 특정 하위문화(Subculture)의 전유물이었습니다. '점잖은' 중산층의 시선에서, 몸에 그림을 새기는 행위는 여전히 문명화되지 못한 야만적인 행동이자, 사회에 반항하는 불온한 표식으로 여겨졌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제가 어릴 적 어른들로부터 "몸에 그림 그리는 건 나쁜 사람들이나 하는 짓"이라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타투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이 이처럼 깊은 역사적 뿌리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4. 반항에서 예술로, 주류가 된 캔버스

수십 년간 하위문화의 상징이었던 타투가 마침내 주류 문화로 진입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특히 1960년대의 반문화(Counter-culture) 운동이었습니다. 전쟁을 겪으며 기존 사회 질서에 대한 불신을 갖게 된 젊은 세대, 즉 히피, 바이커, 록 스타들은 기성세대의 가치관에 저항하는 의미로 타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타투는 이제 숨겨야 할 낙인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과 저항 정신을 드러내는 가장 강력한 *'자기표현'의 수단이 된 것입니다. 이 시기를 거치며, 노먼 "세일러 제리" 콜린스나 에드 하디와 같은 전설적인 타투이스트들은 전통적인 선원 문신에 일본의 이레즈미와 같은 예술적 요소를 결합하여, 타투를 단순한 그림에서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습니다. 어두운 뒷골목의 작업실은 이제 위생적이고 세련된 '타투 스튜디오'로 변모했습니다. 이 모든 역사를 알고 나니, 제가 다큐멘터리에서 보았던 폴리네시아의 문신이 새롭게 보입니다. 고대의 신성한 의식에서 시작하여, 선원의 기록을 거쳐, 반항의 상징이 되고, 마침내 우리 몸이라는 캔버스 위에 펼쳐지는 예술이 되기까지. 타투의 역사는 인류가 어떻게 자신의 몸을 통해 정체성을 표현하고, 시대의 금기에 맞서 싸워왔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뜨거운 기록입니다. 여러분의 몸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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