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소한것들의 역사

가난한 자들의 음식에서 세계인의 축제로, 피자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나

by handago-blog 2025. 8. 24.

가끔 아이들과 저녁 메뉴로 피자를 시켜먹곤 합니다. 콤비네이션, 포테이토, 하와이안까지 각자 취향은 다르지만, 둥근 도우 위에 펼쳐진 따뜻한 음식을 함께 먹는 즐거움은 언제나 행복입니다. 이 당연한 '축제의 음식' 피자가, 사실은 이탈리아의 가난한 노동자들이 허기를 달래던 길거리 음식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이 놀라운 신분 상승의 비결이 궁금해져, 저는 음식의 세계사를 다룬 캐럴 헬스토스키의 책 『피자, A Global History』를 찾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둥근 빵 조각이 어떻게 가난의 상징에서 왕비의 찬사를 거쳐, 마침내 전 세계인의 식탁을 정복하게 되었는지 그 위대한 여정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난한 자들의 음식에서 세계인의 축제로, 피자

목차

  1. 나폴리의 눈물 젖은 빵, 피자의 비천한 기원
  2. 왕비의 찬사, 마르게리타 피자의 탄생
  3. 아메리칸드림을 품고, 피자가 신대륙으로 가다
  4. 배달 상자와 함께, 세계인의 축제가 되다

1. 나폴리의 눈물 젖은 빵, 피자의 비천한 기원

책에 따르면, 오늘날 우리가 아는 피자의 직접적인 조상은 18세기 이탈리아의 가장 가난한 도시였던 나폴리의 길거리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나폴리는 유럽에서 가장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시 중 하나로, 일자리를 찾아 몰려든 수많은 빈민, '라차로니(Lazzaroni)'들로 넘쳐났습니다. 그들은 집이라고 부를 만한 공간도 없이 거리에서 생활하며, 최소한의 돈으로 최대한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음식이 절실했습니다. 바로 그 필요에 완벽하게 부응한 것이 피자였습니다. 당시의 피자는 지금처럼 화려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값싼 밀가루로 만든 평평한 빵 위에, 돼지기름을 바르고 마늘과 소금을 뿌리거나, 운이 좋으면 토마토나 멸치 몇 조각을 얹어 화덕에 구워낸, 지극히 단순하고 소박한 음식이었습니다. 피자 가게는 따로 없었고, 거리의 상인들이 화덕에서 구운 피자를 들고 다니며 조각 단위로 팔았습니다. 라차로니들은 이 뜨거운 빵 조각을 사서 접어든 채, 길을 걸으며 끼니를 해결했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인류의 가장 위대한 음식들 중 상당수가 이처럼 가난과 배고픔 속에서 탄생했다는 사실에 숙연함을 느꼈습니다. 피자는 부유층에게는 더럽고 비천한 음식으로 여겨졌지만, 가난한 나폴리 사람들에게는 고된 하루를 버티게 해주는 유일한 위안이자 '눈물 젖은 빵'이었습니다.

2. 왕비의 찬사, 마르게리타 피자의 탄생

수백 년간 가난의 상징이었던 피자의 운명을 하루아침에 바꾼 극적인 사건은 1889년 나폴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당시 막 통일을 이룬 이탈리아 왕국의 **마르게리타 여왕(Queen Margherita)**이 남편 움베르토 1세와 함께 국민 통합을 위한 순행의 일환으로 나폴리를 방문했습니다. 궁정의 화려하고 복잡한 프랑스 요리에 싫증이 난 여왕은, 이 도시의 서민들이 먹는다는 '피자'를 맛보고 싶다는 파격적인 요청을 합니다. 왕실은 당대 최고의 피자 장인(Pizzaiolo)이었던 **라파엘레 에스포지토(Raffaele Esposito)**를 궁으로 불렀습니다. 그는 고심 끝에, 갓 통일된 이탈리아의 국기를 상징하는 세 가지 피자를 여왕에게 바쳤습니다. 바로 초록색 바질, 흰색 모차렐라 치즈, 그리고 붉은색 토마토를 올린 피자였습니다. 이 세 가지 색의 조화는 단순한 미학을 넘어, 새로운 국가에 대한 충성과 애국심을 담은 정치적인 메시지이기도 했습니다. 여왕은 이 단순하면서도 조화로운 맛에 크게 감동했고, 에스포지토는 여왕의 이름을 따 이 피자를 **'마르게리타 피자'**라고 부르게 됩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며, 한 사람의 권위가 어떻게 한 음식의 계급을 완전히 바꾸어 놓을 수 있는지 그 힘을 실감했습니다. 왕비가 사랑한 음식이 되자, 피자는 더 이상 비천한 음식이 아닌,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자랑스러운 국가적 상징으로 거듭나게 된 것입니다.

3. 아메리칸드림을 품고, 피자가 신대륙으로 가다

왕비의 인정을 받은 피자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가난을 피해 신대륙으로 향하는 이탈리아 이민자들의 보따리 속에서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뉴욕, 시카고 등 '리틀 이탈리아'라 불리는 이민자 공동체를 중심으로 작은 피자가게(Pizzeria)들이 문을 열었지만, 수십 년간 피자는 여전히 이탈리아인들만 먹는 낯선 '민족 음식(Ethnic Food)'에 불과했습니다. 피자가 미국 전역을 정복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제2차 세계대전이었습니다. 이탈리아 전선에 참전했던 수많은 미군 병사들이 현지에서 맛본 따뜻하고 풍성한 피자의 매력에 푹 빠져 고향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전쟁의 굶주림과 공포 속에서 맛본 피자는 그들에게 단순한 음식을 넘어, 따뜻한 위안과 평화의 상징이었습니다. 이 '피자 대사'들의 입소문을 타고 피자에 대한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피자는 이탈리아 이민자들의 음식을 넘어, 모든 미국인이 사랑하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전쟁이라는 비극이 때로는 이처럼 예상치 못한 문화 교류의 촉매제가 될 수 있다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피자는 풍요로운 '아메리칸드림'의 새로운 상징이 될 준비를 마쳤습니다.

4. 배달 상자와 함께, 세계인의 축제가 되다

책을 덮고, 저는 식탁 위에 놓인 피자 상자를 바라보았습니다. 전후 미국에서 피자는 두 가지 위대한 발명과 만나며 마침내 세계인의 음식이 되었습니다. 첫째는 피자헛, 도미노피자와 같은 프랜차이즈 체인의 등장이었습니다. 이들은 피자를 만드는 과정을 완벽하게 표준화하여, 미국의 어느 도시, 어느 동네를 가더라도 똑같은 맛과 품질의 피자를 즐길 수 있다는 신뢰를 주었습니다. 이는 피자를 낯선 음식에서 친숙하고 믿을 수 있는 음식으로 바꾸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둘째는 바로 골판지 피자 상자의 발명이었습니다. 1960년대에 발명된 이 상자는 피자를 따뜻하고 눅눅해지지 않게 집까지 안전하게 배달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이로 인해 피자는 식당에서 먹는 외식 메뉴를 넘어, 온 가족이 거실에 모여 TV를 보며 즐기는 가정의 축제 음식으로 그 지위가 격상되었습니다. 이후 피자는 전 세계로 퍼져나가며 각 나라의 식문화와 만나 불고기 피자, 하와이안 피자, 탄두리 치킨 피자 등 수많은 형태로 변주되었습니다. 가난한 노동자의 허기를 달래주던 나폴리의 길거리 음식에서 시작하여, 마침내 전 세계인이 함께 나누어 먹는 축제의 상징이 되기까지. 피자의 역사는 가장 비천한 곳에서 시작된 음식이 어떻게 가장 보편적인 행복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위대한 증거입니다. 여러분에게 피자는 어떤 즐거운 기억을 떠올리게 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