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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것들의 역사

중세 신학 대학에서 연구의 중심으로, 대학교는 어떻게 진화했나

by handago-blog 2025. 8. 26.

얼마 전, 책장을 정리하다가 먼지 쌓인 대학교 졸업 앨범을 발견했습니다. 앨범 속 앳된 얼굴의 친구들과 자유롭게 캠퍼스를 거닐던 제 모습을 보니, 그 시절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습니다. 저에게 대학교는 새로운 지식을 탐구하고, 미래를 꿈꾸며, 때로는 세상에 저항하던 자유로운 공간이었습니다. 문득 이 지식의 상아탑이 본래 신의 진리를 보존하고 해석하는 것이 유일한 목표였던 중세의 신학 공동체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이 거대한 간극이 궁금해져, 저는 자크 르 고프의 명저 『중세의 지식인들(Intellectuals in the Middle Ages)』을 다시 펼쳐보았습니다. 어떻게 성서를 연구하던 학자들의 조합이, 우주의 비밀을 탐구하는 현대의 연구 중심 대학으로 진화할 수 있었을까요? 지금부터 저의 이 작은 호기심에서 시작된, 대학교의 위대한 진화의 역사를 함께 따라가 보겠습니다.

 

<목차>

  1. 지식의 길드, '우니베르시타스'의 탄생
  2. 신학은 학문의 여왕, 스콜라 철학의 시대
  3. 인문주의의 바람과 세속 지식의 성장
  4. 훔볼트의 혁명, 연구 중심 대학의 탄생

1. 지식의 길드, '우니베르시타스'의 탄생

책에 따르면, 현대적인 대학교가 탄생하기 전, 중세 초 유럽에서 학문과 지식은 주로 외딴 수도원의 필사실에 갇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11세기를 지나면서 상업이 발달하고 도시가 성장하자, 사회는 성직자 외에도 법률가, 의사, 행정가와 같은 전문적인 지식인들을 필요로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여, 이탈리아의 볼로냐와 프랑스의 파리 같은 도시들로 지식을 갈망하는 학생들과 그들을 가르치는 스승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아직 공식적인 조직이 아니었기에, 도시 당국의 횡포나 부당한 하숙비 요구에 시달리기 일쑤였습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며, 당시 지식인들이 얼마나 불안정한 존재였는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생들과 스승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교육의 질을 표준화하기 위해 일종의 '지식의 길드(Guild)'를 결성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조합' 또는 '공동체'를 의미하는 라틴어, '우니베르시타스(Universitas)', 즉 대학교의 기원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자유와 진리의 상징으로 여기는 대학이, 사실은 생존권을 위한 이익 집단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역설적으로 다가왔습니다.

2. 신학은 학문의 여왕, 스콜라 철학의 시대

중세 대학의 지적 활동을 지배했던 것은 스콜라 철학(Scholasticism)이라는 독특한 학문 방법론이었습니다. 스콜라 철학의 궁극적인 목표는 인간의 '이성(철학)'과 신의 '계시(신학)'를 조화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대학의 학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을 도구로 삼아, 성서의 구절과 교회의 교리를 논리적으로 증명하고 체계화하려 했습니다. 수업은 주로 교수가 고전 텍스트를 낭독하고 주석을 다는 '강의(Lectio)'와, 특정 주제에 대해 찬반으로 나뉘어 치열한 논리 대결을 벌이는 '토론(Disputatio)'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 시대에 모든 학문은 신학을 정점으로 하는 위계질서 속에 있었습니다. 법학은 신의 법을, 의학은 신이 창조한 인간의 몸을, 철학은 신의 존재를 이해하기 위한 도구였습니다. '신학은 모든 학문의 여왕'이었고, 대학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교회의 지적 권위를 뒷받침하고, 유능한 성직자와 신학자를 양성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우주'를 의미하는 'University'라는 단어가 무색하게, 당시의 지식 세계가 얼마나 좁고 단단한 틀에 갇혀 있었는지 상상해 보았습니다. 대학은 진리를 '탐구'하는 곳이라기보다는, 이미 주어진 진리를 '확인'하고 '증명'하는 신성한 공간이었던 것입니다.

중세 신학 대학에서 연구의 중심으로, 대학교

3. 인문주의의 바람과 세속 지식의 성장

'신학의 시녀'였던 학문들이 점차 독립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14세기 이후 르네상스 인문주의(Humanism)의 바람이 불면서부터입니다. 인문주의자들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문헌을 신학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로 인간의 삶과 언어, 역사를 이해하기 위한 텍스트로 다시 읽기 시작했습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은 이러한 고전 텍스트와 새로운 사상을 유럽 전역으로 빠르게 확산시키며, 대학의 지적 풍경을 바꾸었습니다. 신학과 법학, 의학이라는 전통적인 학문 외에, 역사, 수사학, 시(詩)와 같은 인문학 과목들이 중요하게 다뤄지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대항해시대와 과학의 발전은 대학의 담장 밖에서 새로운 지식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대학은 더 이상 과거의 지식을 보존하는 것만으로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이 부분을 읽으며, 저는 지식이란 결코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시대의 요구와 기술의 발전 속에서 끊임없이 스스로의 경계를 허물며 성장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4. 훔볼트의 혁명, 연구 중심 대학의 탄생

중세 대학의 모델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오늘날과 같은 '연구 중심 대학(Research University)'을 탄생시킨 결정적인 혁명은 19세기 초 프로이센에서 일어났습니다. 1810년, 언어학자이자 교육 개혁가였던 빌헬름 폰 훔볼트(Wilhelm von Humboldt)는 베를린 대학을 설립하며 완전히 새로운 대학 이념을 제시했습니다. 바로 '가르치는 것과 연구하는 것의 통일(Einheit von Lehre und Forschung)'입니다. 훔볼트에게 대학은 더 이상 기존의 지식을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교육 기관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교수가 곧 최전선의 연구자여야 하며, 학생들은 그 연구 과정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학문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대학의 목표는 정해진 지식의 암기가 아니라, 교수와 학생이 함께 미지의 세계를 탐구하며 새로운 지식을 끊임없이 창조해내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훔볼트의 이념이 바로 제가 대학 시절 내내 느꼈던 학문의 설렘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사실에 전율했습니다. 이 독일의 연구 중심 대학 모델은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세계적인 표준으로 자리 잡았고, 오늘날 전 세계 모든 대학이 추구하는 이상이 되었습니다. 신의 진리를 수호하던 중세의 길드에서 시작하여, 마침내 인간의 이성으로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지식의 최전선이 되기까지. 대학교의 역사는 인류가 어떻게 '아는 것'에서 '알아가는 것'으로 지식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왔는지를 보여주는 위대한 기록입니다. 여러분에게 대학교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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