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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것들의 역사

아시아의 생선 소스에서 미국의 상징으로, 케첩의 놀라운 변신

by handago-blog 2025. 8. 23.

늦은 밤 항상 출출할 때 야식으로 감자튀김이 최고죠. 감자튀김하면 케첩을 빼먹을 수 없는데 이 새빨간 소스를 듬뿍 짜내며, 문득 이 당연한 조합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햄버거, 핫도그, 감자튀김 옆에 언제나 당연하게 자리하는 이 새콤달콤한 붉은 소스, 케첩. 저에게 케첩은 그저 '미국적인 맛'의 상징일 뿐이었습니다. 이 호기심을 풀기 위해 저는 앤드루 F. 스미스의 책 케첩, 순수한 미국의 소스(Pure Ketchup: A History of America's National Condiment)』에 대한 기사를 찾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맛있게 먹었던 케첩의 역사를 다시 확인하게 되었고 이 지극히 미국적인 소스가 사실은 토마토 한 방울 들어가지 않은 아시아의 짭짤한 생선 소스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지금부터 저의 이 작은 호기심에서 시작된, 케첩의 놀라운 변신의 역사를 인문학적 시선으로 돌아봅니다.

아시아의 생선 소스에서 미국의 상징으로, 케첩

 

목차

  1. 케첩의 기원, 토마토 없는 생선 소스
  2. 영국의 변신, 버섯과 호두 케첩의 시대
  3. 토마토와의 운명적 만남과 하인즈의 혁명
  4. 미국의 상징, 햄버거와 함께 세계를 정복하다

1. 케첩의 기원, 토마토 없는 생선 소스

책에 따르면, 케첩의 역사는 17세기 동남아시아의 분주한 항구들에서 시작됩니다. 당시 중국 남부 푸젠성 방언으로 '케치압(kê-tsiap)'이라 불리던 소스가 있었는데, 이는 '생선 절인 즙'을 의미하는 단어였습니다. 이름 그대로, 당시의 케첩은 생선을 소금에 절여 오랜 시간 발효시킨 짙은 갈색의 액젓이었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가 알던 새빨갛고 달콤한 케첩이, 사실은 멸치 액젓이나 동남아의 피시 소스와 비슷한 계열의 짭짤하고 비릿한 발효 소스였다니요. 17세기 말, 향신료 무역을 위해 동남아시아를 오가던 영국의 선원들은 길고 고된 항해에 지쳐있었습니다. 매일 소금에 절인 고기와 딱딱한 건빵만 먹던 그들의 입맛에, 이 이국적이고 감칠맛 넘치는 소스는 그야말로 신세계였습니다. 그들은 이 중독적인 맛의 소스를 본국으로 가져와 '캐찹(Catchup)' 또는 '케첩(Ketchup)'이라는 이름으로 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 소스를 만드는 정확한 레시피를 알 수 없었고, 오직 완성된 제품만을 비싼 값에 수입할 수 있었습니다. 케첩은 동양의 신비로운 맛을 담은, 귀하고 값비싼 수입품이자 선원들의 모험담과 함께 전해진 미지의 존재였습니다.

2. 영국의 변신, 버섯과 호두 케첩의 시대

동양의 맛에 매료된 영국인들은 곧 자신들의 부엌에서 이 신비로운 소스를 재현하려는 시도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손에 동남아시아의 생선이나 콩은 없었습니다. 대신 그들은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으면서도 비슷한 감칠맛(우마미)을 낼 수 있는 재료, 바로 버섯, 호두, 굴, 멸치 등을 이용해 자신들만의 '케첩'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18세기 영국의 요리책에는 수많은 종류의 케첩 레시피가 등장합니다. 특히 '버섯 케첩'과 '호두 케첩'은 큰 인기를 끌었는데, 이 케첩들 역시 오늘날의 토마토케첩과는 거리가 먼, 짭짤하고 감칠맛 나는 검은색 또는 갈색의 소스였습니다. 이 소스들은 주로 구운 고기나 생선 요리의 풍미를 더하고, 수프나 스튜의 맛을 깊게 만드는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며, 하나의 이름('케첩')이 어떻게 내용물이 완전히 바뀐 채로 유지될 수 있는지 그 생명력에 감탄했습니다. 마치 '김치'라는 이름은 그대로인데, 주재료가 배추가 아닌 버섯이나 호두로 바뀐 것과 같은 상황이었을 테니까요. 냉장 기술이 없던 시절, 오래 보관할 수 있으면서도 음식의 풍미를 극대화해주는 이 액상 조미료는 영국인들의 식탁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 시기, 케첩은 특정 소스를 지칭하는 고유명사라기보다는,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짭짤한 액상 조미료'를 통칭하는 보통명사에 가까웠습니다.

3. 토마토와의 운명적 만남과 하인즈의 혁명

케첩이 마침내 자신의 운명적인 파트너, 토마토를 만난 것은 19세기 초 미국에서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토마토는 벨라돈나와 같은 독성 식물과 같은 가지과 식물이라는 이유로 '독이 든 사과(Poison Apple)'라 불리며 관상용으로만 재배될 뿐, 식용으로는 기피되던 식물이었습니다. 1834년, 오하이오의 한 의사가 토마토케첩을 만병통치약으로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토마토에 대한 인식이 점차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당시 공장에서 만들어지던 토마토케첩은 잘 익지 않은 토마토를 사용해 맛이 없었고, 부패를 막기 위해 석탄 타르나 벤조산나트륨 같은 유해한 방부제를 다량으로 첨가한 매우 비위생적인 제품이었습니다. 이 혼란의 시대를 끝내고 현대 케첩의 기준을 세운 영웅은 바로 헨리 J. 하인즈(Henry J. Heinz)였습니다. 1876년, 그는 방부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대신 잘 익은 붉은 토마토와 다량의 식초, 설탕, 그리고 향신료만을 사용하여 맛과 보존성을 모두 잡은 혁신적인 케첩을 출시했습니다. 그의 가장 위대한 전략은 바로 투명한 유리병을 사용한 것이었습니다. 경쟁사들이 내용물이 보이지 않는 초록색이나 갈색 병에 제품을 담아 팔 때, 그는 자신의 제품이 얼마나 깨끗하고 신선한지 소비자들이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는 품질에 대한 엄청난 자신감의 표현이자, 소비자와의 신뢰를 쌓는 결정적인 한 수였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위대한 혁신이란 것이 때로는 새로운 것을 발명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것을 '올바르게' 만드는 집념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4. 미국의 상징, 햄버거와 함께 세계를 정복하다

책을 덮고, 저는 제 앞에 놓인 케첩 병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습니다. 하인즈가 만든 깨끗하고, 달콤하며, 표준화된 케첩은 20세기 초, 자동차의 보급과 함께 성장한 패스트푸드 산업과 만나면서 마침내 세계를 정복하게 됩니다. 다이너(Diner)에서 파는 핫도그와 햄버거, 그리고 감자튀김에 케첩은 빠질 수 없는 완벽한 파트너였습니다. 케첩의 새콤달콤한 맛은 기름진 음식의 느끼함을 잡아주었고, 선명한 붉은색은 식욕을 돋우었습니다. 무엇보다 어떤 가게에서 먹어도 변치 않는 일관된 맛은, 표준화와 효율성을 중시하는 미국적인 가치와 완벽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 케첩은 점차 자유와 풍요, 그리고 실용성을 상징하는 '미국적인 맛'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아시아의 짭짤한 생선 소스에서 시작된 이 길고 긴 여정은, 마침내 미국의 식탁 위에서 그 화려한 변신을 완성한 것입니다. 이제 저는 감자튀김에 케첩을 찍을 때마다, 그 안에 담긴 수천 년의 역사를 떠올리게 될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식탁 위 케첩은, 여러분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나요?

미국의 상징, 햄버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