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늘날 창가에 앉아 빗방울이 유리창을 타고 흘러내리는 모습을 바라보는 건 언제나 기분이 좋습니다. 바깥세상의 궂은 날씨로부터 안전하게 분리된 채, 안락한 실내에서 바깥 풍경을 감상하는 이 평온한 순간. 문득 이 당연한 경험이 인류 역사에서 얼마나 큰 축복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 저는 집 안의 모든 것들의 역사를 탐구하는 빌 브라이슨의 명저 『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At Home)』를 다시 펼쳐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우리가 매일 세상을 내다보는 이 투명한 창문이, 사실은 수천 년간 인류를 추위와 어둠 속에 가두었던 벽의 딜레마를 해결하고, 빛과 공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송두리째 바꾼 위대한 혁명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목차
1. 창문 이전의 시대, 벽에 뚫린 구멍
책에 따르면, 유리 창문이 발명되기 전 인류에게 창문은 그저 '벽에 뚫린 구멍'에 불과했습니다. 어두컴컴한 실내에 빛을 들이고, 불을 피울 때 나는 연기를 내보내기 위한 최소한의 통로였죠. 하지만 이 구멍은 빛과 함께 비바람과 혹독한 추위, 그리고 원치 않는 벌레나 동물까지도 함께 들여왔습니다. 사람들은 이 구멍을 동물의 가죽이나, 기름 먹인 천, 혹은 얇게 편 동물의 방광 막으로 막거나, 나무 덧문을 달아 여닫아야 했습니다. 문을 닫으면 빛이 차단되고, 문을 열면 추위에 떨어야 하는 이 극단적인 선택의 기로. 저는 이 대목에서,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밝고 따뜻한 실내'라는 개념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당시의 집은 외부 세계의 위협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견고한 요새였지만, 동시에 그 안은 어둡고 폐쇄적인 감옥과도 같았습니다.
2. 유리의 발명, 빛을 들이고 추위를 막다
이 오랜 딜레마를 해결한 것은 바로 유리(Glass)의 발명이었습니다. 고대 로마인들은 처음으로 건물에 유리를 끼워 넣기 시작했지만, 당시의 유리는 불투명하고 두꺼워 빛을 희미하게 투과시키는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진정한 혁명은 르네상스 시대 베네치아의 유리 장인들이 투명하고 평평한 판유리를 만드는 기술을 완성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마침내 인류는 바깥세상과 나를 분리하면서도, 시각적으로는 연결될 수 있는 마법 같은 도구를 손에 넣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 투명한 창문은 엄청나게 비싼 사치품이었습니다. 오직 거대한 성당과 왕궁, 그리고 대부호의 저택만이 이 새로운 기술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특히 성당의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는 문맹이었던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성서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시각적인 경전이자, 천상의 빛이 지상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신성한 통로였습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며, 창문이 단순히 빛을 들이는 기능을 넘어, 한 시대의 신앙과 권력을 상징하는 강력한 매체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3. 산업혁명과 창문세, 빛의 민주화
수백 년간 소수의 특권이었던 투명한 창문이 마침내 모든 사람의 것이 될 수 있었던 것은 19세기 산업혁명 덕분이었습니다. 새로운 기술의 발전으로 크고 평평한 판유리를 저렴한 가격에 대량 생산할 수 있게 되면서, 중산층의 주택에도 점차 크고 밝은 창문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 위생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햇빛이 살균 작용을 하고 신선한 공기가 건강에 좋다는 믿음이 확산되었고, 밝고 환한 집은 건강과 문명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당시 영국 정부가 창문의 개수를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는 '창문세(Window Tax)'를 도입했다는 사실입니다. 창문이 많을수록 부자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이 세금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은 세금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창문을 벽돌로 막아버리는 웃지 못할 비극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빛을 누릴 권리'조차 계급에 따라 달라졌던 시대의 서글픈 단면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결국 창문세는 공중보건에 해롭다는 비판 속에 폐지되었고, 창문은 비로소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빛을 선물하는 민주적인 존재가 되었습니다.
4. 세상을 담는 프레임, 현대 창문의 탄생
책을 덮고, 저는 제가 앉아있는 카페의 거대한 통유리창을 바라보았습니다. 20세기에 이르러, 철근콘크리트와 강철 프레임 기술의 발전은 건축가들에게 벽 전체를 유리로 만드는 '커튼 월(Curtain Wall)' 공법을 선물했습니다. 이제 창문은 더 이상 벽에 뚫린 구멍이 아니라, 벽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실내와 실외의 경계는 희미해졌고, 우리는 마치 풍경화처럼 창문이라는 프레임 안에 담긴 세상을 감상하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오늘날 우리가 매일 들여다보는 컴퓨터 모니터와 스마트폰 화면 역시 '윈도우(Windows)'라는 이름의 디지털 창문입니다. 우리는 이 새로운 창문을 통해 전 세계와 소통하고, 정보를 얻으며, 또 다른 세상을 경험합니다. 고대의 어두운 동굴 속 작은 구멍에서 시작하여, 마침내 우리 손 안에서 세상을 비추는 디지털 창이 되기까지. 창문의 역사는 인류가 어떻게 어둠과 단절을 극복하고, 빛과 소통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왔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투명한 증거입니다. 여러분의 창문은, 오늘 어떤 세상을 보여주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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