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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것들의 역사

궁정 광대에서 시트콤까지, 웃음은 어떻게 시대의 거울이 되었나

by handago-blog 2025. 8. 31.

힘든 하루를 마치고 소파에 누워 좋아하는 시트콤을 보며 한참을 웃었습니다. 등장인물들의 어설픈 상황과 재치 있는 대사에 웃다 보니, 어느새 하루의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지는 기분이었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왜 이런 이야기에 웃는 걸까? 그리고 이 웃음은 언제부터 우리의 일상이 되었을까?'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 저는 사회 비평가이자 철학자인 슬라보예 지젝의 저서에서 코미디의 역할을 다룬 부분을 다시 찾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우리가 무심코 터뜨리는 웃음이, 사실은 그 시대의 권력 구조와 사회적 불안, 그리고 가장 깊은 욕망을 비추는 '시대의 거울'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금부터 저의 이 작은 호기심에서 시작된, 웃음의 위대한 역사를 함께 따라가 보겠습니다.

궁정 광대에서 시트콤까지, 웃음

목차

  1. 왕의 발밑에서 진실을 말하다, 궁정 광대의 줄타기
  2. 권력을 조롱하는 새로운 무기, 풍자와 카니발의 시대
  3. 기계 시대의 슬픈 웃음, 찰리 채플린과 슬랩스틱
  4. 우리들의 이야기, 시트콤과 스탠드업 코미디

1. 왕의 발밑에서 진실을 말하다, 궁정 광대의 줄타기

책에 따르면,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 웃음은 매우 엄격하게 통제된, 위험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딱 한 사람, 궁정 광대(Court Jester)에게만은 예외적으로 웃음과 조롱이 허락되었습니다.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방울 달린 모자를 쓴 광대는 단순히 우스꽝스러운 몸짓으로 왕을 즐겁게 하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왕의 발밑에서, 다른 모든 신하가 감히 입에 담지 못하는 날카로운 진실을 농담과 풍자 속에 섞어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왕의 어리석은 정책을 비꼬거나, 탐욕스러운 귀족을 조롱하는 그의 말은 '농담'이라는 안전장치 덕분에 처벌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웃음이 가장 엄격한 권력 구조 속에서도 진실을 전달하는 유일한 통로로 기능했다는 사실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 웃음은 철저히 왕에게 종속된, '허락된 웃음'이었습니다. 광대의 웃음은 결코 왕 자신을 향한 것이 될 수 없었으며, 그 선을 넘는 순간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아슬아슬한 줄타기였습니다.

궁정광대

2. 권력을 조롱하는 새로운 무기, 풍자와 카니발의 시대

왕의 발밑에 묶여 있던 웃음이 마침내 거리로 나와 권력을 향한 날카로운 무기가 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이후, 인쇄술의 발달과 함께 부르주아 계급이 성장하면서부터입니다. 프랑스의 몰리에르와 같은 극작가는 자신의 희곡을 통해 귀족들의 위선과 허영심을 통렬하게 조롱했고, 이는 새롭게 떠오르던 시민 계급에게 큰 카타르시스를 선사했습니다. 익명의 작가들이 쓴 풍자적인 팸플릿은 인쇄술을 통해 대량으로 복제되어, 왕과 교회의 권위를 비웃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되었습니다. 러시아의 사상가 미하일 바흐친은 그의 저서에서 중세의 '카니발(축제)'이 가지는 전복적인 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카니발 기간 동안에는 모든 사회적 계급과 규범이 일시적으로 무너지고, 성스러운 것들이 조롱의 대상이 되며, 웃음을 통해 기존의 질서가 전복되는 해방의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며, 웃음이 단순히 개인적인 감정을 넘어, 억압된 사회의 에너지를 분출하고 변화를 꿈꾸게 하는 강력한 사회적 힘을 가지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3. 기계 시대의 슬픈 웃음, 찰리 채플린과 슬랩스틱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산업혁명은 인류에게 풍요와 함께 새로운 종류의 불안을 안겨주었습니다. 농촌을 떠나 삭막한 도시의 공장으로 모여든 사람들은,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기계의 부속품처럼 일해야 했습니다. 바로 이 시대의 슬픔과 웃음을 가장 완벽하게 담아낸 인물이 바로 찰리 채플린이었습니다. 영화 <모던 타임스>에서 그가 연기한 '리틀 트램프'는 거대한 기계 장치 속에서 끊임없이 헛발질하고 넘어지는 슬랩스틱 코미디를 통해, 비인간적인 산업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연약한 개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그의 우스꽝스러운 몸짓에 웃음을 터뜨리지만, 그 웃음의 이면에는 기계에 의해 소외된 인간의 슬픔, 즉 페이소스(Pathos)가 짙게 깔려 있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가장 위대한 코미디는 종종 가장 깊은 슬픔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채플린의 웃음은 낯선 도시에서 고군분투하던 수많은 이민자와 노동자들에게 보내는 따뜻한 위로이자, 거대한 시스템에 대한 작지만 끈질긴 저항이었습니다.

4. 우리들의 이야기, 시트콤과 스탠드업 코미디

책을 덮고, 저는 제가 즐겨보던 시트콤을 다시 떠올려보았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텔레비전의 등장은 웃음의 풍경을 다시 한번 바꾸어 놓았습니다. 거실 안으로 들어온 시트콤(Situation Comedy)은 평범한 가족의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갈등과 화해를 보여주며, 시대가 꿈꾸는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을 그려냈습니다. 1960년대 이후에는 인종 문제, 성 평등, 정치적 이슈를 다루는 사회 풍자적인 시트콤이 등장하며, 웃음은 우리 사회의 가장 민감한 문제들을 공론장으로 끌어내는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무대 위에 마이크 하나만 들고 서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스탠드업 코미디는, 개인의 가장 내밀한 경험과 불안이 어떻게 보편적인 웃음과 공감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이제 웃음은 더 이상 왕을 위한 것도, 대중을 계몽하기 위한 것도 아닌, 바로 '나'와 '우리'의 이야기를 하는 가장 솔직한 언어가 된 것입니다. 궁정 광대의 아슬아슬한 농담에서 시작하여, 마침내 우리들의 거실 속 시트콤이 되기까지. 웃음의 역사는 인류가 어떻게 권력에 저항하고, 시대의 아픔을 보듬으며, 마침내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유쾌하고도 깊이 있는 거울입니다. 여러분을 웃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 웃음 속에는 분명,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의 모습이 담겨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