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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것들의 역사

세상을 조립하는 보이지 않는 힘, 나사는 어떻게 모든 것을 연결했나

by handago-blog 2025. 10. 18.

저는 지난 주말, 새로 산 책장을 조립하며 몇 시간을 꼬박 보냈습니다. 설명서를 따라 나무판들을 맞추고, 작은 나사를 돌려 단단히 고정하는 작업을 반복하며 땀을 흘렸습니다. 마지막 나사를 조이고 흔들림 없는 책장을 완성했을 때의 그 뿌듯함. 문득 제 손에 들린 이 작고 보잘것없는 나사가 없었다면, 이 모든 과정이 불가능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 저는 일상의 도구에 담긴 깊은 역사를 탐구한 위톨드 리브친스키의 명저 『스크루드라이버와 나사, 그 기원에 관하여(One Good Turn: A Natural History of the Screwdriver and the Screw)』를 다시 펼쳐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작은 나선형의 쇠붙이가, 사실은 못과 망치의 시대를 끝내고 '조립과 분해'라는 현대적 사고방식을 탄생시킨, 가장 위대하고도 조용한 혁명의 주인공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목차

  1. 나선의 발견, 물을 끌어올리던 고대의 지혜
  2. 산업혁명의 숨은 영웅, '표준화'의 탄생
  3. 못의 시대를 끝내다, '조립하고 분해하는' 사고방식
  4. 보이지 않는 연결, 현대 문명의 뼈대가 되다

고대 아르키메데스 원리에서 산업혁명 표준화까지, 세상을 연결한 나사의 혁명적 역할
작은 나사는 산업혁명과 현대 기술 문명을 가능하게 한 가장 위대한 발명 중 하나입니다.

1. 나선의 발견, 물을 끌어올리던 고대의 지혜

책에 따르면, 나사의 핵심 원리인 나선(Helix)의 발견은 놀랍게도 '결합'이 아닌 '이동'의 목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위대한 기원은 기원전 3세기 고대 그리스의 천재 수학자 아르키메데스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는 나선형의 날개를 원통 안에 넣어 돌리면, 낮은 곳의 물을 높은 곳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원리를 발견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아르키메데스의 나선 펌프'입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우리가 아는 나사의 조상이 처음에는 무언가를 붙잡는 도구가 아니라, 물이나 곡물을 옮기는 기계의 일부였다는 사실에 큰 흥미를 느꼈습니다. '결합'을 위한 나사는 이후 로마 시대에 포도나 올리브를 압착하는 압착기에 사용되기도 했지만, 이때까지의 나사는 모두 장인이 손으로 일일이 깎아 만든 매우 귀하고 비싼 물건이었습니다. 망치로 두드려 박는 '못'이 훨씬 더 빠르고 저렴했기 때문에, 나사는 수천 년간 시계나 갑옷, 총기와 같은 극소수의 정밀 기계에만 사용되는 특별한 부품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2. 산업혁명의 숨은 영웅, '표준화'의 탄생

수천 년간 장인의 영역에 머물렀던 나사를 모든 사람의 도구로 바꾼 것은 18세기 말 산업혁명의 거대한 물결이었습니다. 증기기관과 방직기 등 복잡한 기계들이 등장하면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밀하고 튼튼한 결합 방식이 필요해졌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나사는 장인마다 만드는 방식이 달라, 크기와 나사산의 간격이 제각각이었습니다. A 공장에서 만든 나사는 B 공장의 너트와 맞지 않았고, 기계가 고장 나면 수리할 부품을 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며, 현대 사회의 기반이 되는 '호환성'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중요하고도 어려운 과제였는지 실감했습니다. 이 혼돈에 질서를 부여한 인물은 영국의 위대한 기계공학자 헨리 모즐리(Henry Maudslay)였습니다. 그는 1800년경, 이전보다 훨씬 더 정밀하게 나사산을 깎을 수 있는 '나사 절삭 선반'을 발명했습니다. 그의 발명 덕분에, 역사상 처음으로 모든 나사를 동일한 규격으로 대량 생산하는, 즉 '표준화(Standardization)'가 가능해졌습니다. 이는 나사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혁명이었습니다. 이제 나사는 더 이상 특별한 부품이 아닌, 어디서든 구할 수 있고 어떤 기계에든 사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부품이 될 준비를 마친 것입니다.

3. 못의 시대를 끝내다, '조립하고 분해하는' 사고방식

표준화된 나사의 대량생산은 인류의 '사고방식' 자체를 바꾸었습니다. 이전까지 무언가를 만드는 것은 주로 '못과 망치'의 방식이었습니다. 한번 박은 못은 빼내기 어렵고, 그 과정에서 재료에 손상을 입힙니다. 즉, 결합은 거의 영구적이고 비가역적인 행위였습니다. 하지만 나사는 달랐습니다. 스크루드라이버만 있으면 언제든 쉽게 풀고 다시 조일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인류에게 *'조립하고 분해할 수 있다(Assembly and Disassembly)'는 혁명적인 사고방식을 선물했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알고 나서, 제가 책장을 조립하며 느꼈던 뿌듯함의 정체를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무언가를 만드는 즐거움을 넘어, 필요에 따라 언제든 분해하고, 수리하고, 변형시킬 수 있다는 '통제감'의 즐거움이었습니다. 이 새로운 사고방식은 20세기 대량생산 시스템의 핵심 철학이 되었습니다. 자동차, 가전제품, 그리고 제가 조립한 이케아 가구에 이르기까지, 현대의 거의 모든 제품은 교체 가능한 부품들을 나사로 조립하여 만들어집니다. 고장 난 부품만 교체하여 수리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나사는 '한 번 만들면 끝'이라는 생각에서, '수리하고 개선하며 계속 쓴다'는 지속가능한 생각으로의 전환을 이끈 보이지 않는 주인공이었습니다.

4. 보이지 않는 연결, 현대 문명의 뼈대가 되다

책을 덮고, 저는 제 주변을 다시 한번 둘러보았습니다. 제가 앉아있는 의자, 글을 쓰고 있는 노트북, 빛을 비추는 스탠드, 심지어 제가 쓰고 있는 안경에 이르기까지. 제 시선이 닿는 거의 모든 물건들이 보이지 않는 나사에 의해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나사는 너무나도 작고 흔해서, 우리는 그것의 존재조차 의식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 작은 강철의 나선은 현대 문명이라는 거대한 구조물을 지탱하는 가장 근본적인 뼈대입니다. 고대 그리스인의 지혜에서 시작하여, 산업혁명의 표준화를 거쳐, 마침내 '조립하는 사고방식'을 우리에게 선물하기까지. 나사의 역사는 가장 작고 사소한 것이 어떻게 세상을 연결하고 움직이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위대한 증거입니다. 제가 무심코 돌렸던 그 나사 하나에, 이처럼 인류 문명을 굴려온 거대한 힘이 담겨 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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