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얼마 전, 주말에 사극 드라마를 몰아보다가 한 장면에 시선이 멈췄습니다. 죄를 지은 인물이 저잣거리 한가운데서 목에 무거운 나무 칼을 쓴 채, 지나가는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조롱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습니다. 문득 이 '형틀(칼)'이라는 형벌이 죄인에게 주는 진짜 고통은 무엇이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단순히 몸을 불편하게 하는 것을 넘어, 모든 사람의 구경거리가 되어야 한다는 그 잔인함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요? 이 호기심을 풀기 위해 저는 현대 철학의 가장 중요한 저작 중 하나로 꼽히는 미셸 푸코의 명저 『감시와 처벌(Discipline and Punish)』을 다시 펼쳐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낡은 형벌 도구가, 사실은 한 개인의 존엄성을 파괴하여 사회 전체를 통제하려 했던, 정교하고도 무서운 권력의 기술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목차

1. 신체의 형벌, 모두가 구경하던 연극
푸코의 책에 따르면, 근대 이전 사회에서 '처벌'은 오늘날과 전혀 다른 의미를 가졌습니다. 당시의 형벌은 감옥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죄인의 '신체'에 직접 고통을 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은 대중 앞에서 공개적으로 이루어지는 한 편의 끔찍한 연극과도 같았습니다. 왕의 권위에 도전한 죄인은 광장에서 사지가 찢기는 공개 처형을 당했고, 도둑은 손목이 잘렸으며, 간통한 여인은 머리가 깎인 채 거리를 돌아다녀야 했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당시 사람들에게 형벌이 얼마나 일상적이고 충격적인 구경거리였을지 상상하며 섬뜩함을 느꼈습니다. 이러한 공개적인 신체형의 목적은 단지 죄인에게 고통을 주는 것을 넘어, 구경하는 모든 사람에게 왕의 절대적인 권력을 과시하고, 법을 어기면 어떤 끔찍한 대가를 치르게 되는지 똑똑히 보여주어 공포심을 심어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처벌은 정의를 실현하는 과정이기 이전에, 권력의 힘을 재확인하는 가장 효과적인 정치적 퍼포먼스였던 셈입니다.
2. '수치심'이라는 감옥, 형틀의 진짜 목적
이러한 공개적인 신체형 중에서, 형틀(Pillory)은 가장 독특한 형태의 처벌이었습니다. 죄인의 목과 손목을 나무판에 고정시켜 꼼짝 못하게 만드는 이 도구는, 다른 형벌처럼 극심한 물리적 고통을 주는 것이 주된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형틀의 진짜 목적은 바로 죄인에게 '수치심(Shame)'이라는 견딜 수 없는 심리적 고통을 안겨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며, 눈에 보이는 상처보다 더 깊은 상처를 남기는 '수치심'이라는 감정의 무게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형틀에 묶인 죄인은 몇 시간, 혹은 며칠 동안 광장 한가운데서 아무런 방어도 하지 못한 채, 자신이 속했던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에게 노출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향해 야유를 퍼붓고, 침을 뱉었으며, 썩은 과일이나 동물의 배설물을 던졌습니다. 이것은 한 개인의 사회적 명예를 완전히 박탈하고, 그를 더 이상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일종의 '사회적 사형선고'였습니다. 육체는 살아있지만, 그의 사회적 존재는 광장에서 공개적으로 살해당하는 것입니다. 형틀은 물리적인 나무 감옥이 아니라, 한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보이지 않는 '수치심의 감옥'이었습니다.
3. 감옥의 탄생과 사라진 구경거리
그렇다면 언제부터 이 끔찍한 구경거리가 광장에서 사라지게 되었을까요? 푸코는 18세기 말과 19세기에 걸쳐, 처벌의 패러다임이 극적으로 변화했다고 분석합니다. 계몽주의 사상의 영향으로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공개적인 신체형은 점차 야만적이고 비합리적인 것으로 여겨지기 시작했습니다. 처벌의 목표는 더 이상 '본보기'를 통한 공포의 확산이 아니라, 범죄자를 사회로부터 격리하고 '교화'시키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에 따라 처벌의 장소는 시끄러운 광장에서 조용한 감옥으로 옮겨졌고, 처벌의 대상은 죄인의 '신체'에서 그의 '정신(영혼)'으로 바뀌었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현대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시설인 '감옥'이 사실은 비교적 최근에 발명된 시스템이라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이제 죄인은 더 이상 구경거리가 아닌, 규율과 감시 속에서 자신의 죄를 반성하고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나야 하는 '관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형벌은 눈에 보이는 잔인한 연극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정교한 통제 시스템으로 진화한 것입니다.
4. 디지털 형틀, 21세기의 공개된 수치
책을 덮고, 저는 제가 처음 이 호기심을 갖게 했던 사극 드라마의 장면을 다시 떠올려보았습니다. 이제 물리적인 형틀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과연 '공개된 수치'라는 형벌 방식은 정말로 사라진 것일까요? 푸코는 보지 못했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새로운 형태의 형틀을 매일 목격하고 있습니다. 바로 *'디지털 형틀'입니다.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인물은 순식간에 인터넷 광장에 끌려 나와, 수많은 익명의 대중에게 신상이 공개되고(신상털기), 돌팔매질과도 같은 악성 댓글의 공격을 받습니다. 잘못된 정보나 과장된 비난 속에서도, 한번 '좌표가 찍힌' 개인은 속수무책으로 자신의 명예와 일상이 파괴되는 것을 지켜봐야 합니다. 저는 이 보이지 않는 디지털 형틀이, 어쩌면 중세의 나무 형틀보다 훨씬 더 잔인하고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에 서늘함을 느꼈습니다. 중세의 형벌은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끝났지만, 디지털 세계에 새겨진 낙인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정의 구현'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에게 손가락질할 때, 우리는 과연 중세의 구경꾼들과 얼마나 다른 모습일까요? 광장의 형틀은 사라졌지만, 수치심을 통해 타인을 통제하려는 인간의 욕망은 여전히 우리 안에 남아있는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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