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난 주말, 약속 장소를 정하다가 "스타필드에서 만나자"는 친구의 말에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쇼핑은 물론,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심지어 서점에서 책을 읽거나 스파를 즐기는 것까지. 이 거대한 복합 공간 안에서는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는 것이 가능합니다. 문득 이 '쇼핑몰'이라는 공간이 언제부터 우리 삶의 약속 장소이자 놀이터가 되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이 호기심을 풀기 위해 저는 도시 건축과 사회의 관계를 다룬 PBS의 다큐멘터리 <위대한 건축물 10선(10 Buildings That Changed America)>을 다시 찾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가 그저 거대한 상점의 집합이라고만 생각했던 이 쇼핑몰이, 사실은 한 이상주의자 건축가의 유토피아적 꿈에서 시작되어, 현대 도시의 중심을 재편하고 우리의 여가와 소비문화를 완전히 바꾸어 놓은 '소비의 대성당'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목차
- 쇼핑몰 이전의 시대, 왁자지껄한 도시의 거리
- 빅터 그루엔의 꿈, '교외'에 유럽 광장을 심다
- 자동차 시대의 축복이자 저주, 쇼핑몰의 황금기
- 온라인 시대의 도전, 쇼핑몰은 어디로 가는가

1. 쇼핑몰 이전의 시대, 왁자지껄한 도시의 거리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쇼핑몰이 탄생하기 전인 20세기 중반까지 '쇼핑'은 철저히 도시의 거리(Downtown)에서 이루어지는 행위였습니다. 사람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백화점과 작은 상점들이 늘어선 번화한 거리를 걸어 다니며 물건을 샀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상상하며, 오늘날의 쾌적한 쇼핑 환경과는 다른, 날씨와 소음에 그대로 노출된 채 발품을 팔아야 했던 그 시절의 불편함과 동시에 활기 넘치는 풍경을 떠올려보았습니다. 당시 도시의 중심은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분수대 앞에서 약속을 잡고,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광장(Plaza)이었습니다. 상업 활동과 공동체의 삶은 분리되지 않은 채, 도시의 거리와 광장이라는 공공장소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졌습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동차가 대중화되고 수많은 중산층이 도시를 떠나 교외(Suburb)로 이주하면서, 이 전통적인 도시의 중심은 서서히 활기를 잃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쇼핑을 위해 복잡한 도심으로 차를 몰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2. 빅터 그루엔의 꿈, '교외'에 유럽 광장을 심다
이러한 교외의 확산과 도심의 쇠퇴를 안타깝게 지켜보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나치를 피해 오스트리아 빈에서 미국으로 망명한 건축가 빅터 그루엔(Victor Gruen)입니다. 그는 자동차에 모든 것을 의존하며, 보행자를 위한 공간이나 공동체의 중심 없이 단독주택만 끝없이 이어진 미국의 교외 풍경을 '영혼 없는 공간'이라며 혐오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어린 시절 경험했던, 자동차 없이 걸어 다니며 상점과 카페, 극장이 어우러진 활기찬 유럽의 도시 광장을 그리워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담하고도 이상주의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립니다. 바로 "유럽의 광장을 교외의 한복판으로, 그것도 지붕 아래로 가져오자!" 저는 이 대목에서, 쇼핑몰의 아버지가 사실은 소비주의자가 아닌, 공동체의 부활을 꿈꿨던 이상주의자였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1956년, 그는 미네소타주에 세계 최초의 완전한 실내 쇼핑몰인 '사우스데일 센터(Southdale Center)'를 설계합니다. 이곳은 단순히 상점을 모아놓은 곳이 아니었습니다. 중앙에는 햇빛이 쏟아지는 거대한 아트리움(Atrium)이 있었고, 그 주위에는 분수대, 카페, 벤치, 예술 작품, 그리고 심지어 새장까지 배치되었습니다. 그는 쇼핑몰이 상업 활동을 넘어, 사람들이 만나고 교류하며 문화를 즐기는 교외의 새로운 심장이 되기를 꿈꿨습니다.
3. 자동차 시대의 축복이자 저주, 쇼핑몰의 황금기
빅터 그루엔의 아이디어는 상업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안전하고, 쾌적한 실내 공간에서 쇼핑과 여가를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쇼핑몰은 교외 중산층의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이 성공은 그루엔에게 깊은 좌절을 안겨주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을 보며, 위대한 발명가의 선한 의도가 어떻게 현실 속에서 왜곡될 수 있는지 그 씁쓸한 과정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루엔은 쇼핑몰을 중심으로 학교, 병원, 주거 단지가 어우러진 보행자 중심의 공동체를 꿈꿨지만, 개발업자들은 오직 가장 돈이 되는 '쇼핑몰' 건물 하나에만 집중했습니다. 그 결과, 쇼핑몰은 교외 공동체의 중심이 되기는커녕, 도심의 상권을 완전히 파괴하고 사람들을 더욱 자동차에 의존하게 만드는 거대한 '소비의 섬'이 되어버렸습니다. 쇼핑몰은 그를 둘러싼 광활한 주차장 없이는 존재할 수 없었고, 이는 그가 그토록 혐오했던 자동차 중심 문화를 더욱 공고히 하는 역설적인 결과를 낳았습니다. 훗날 그루엔은 "나는 내 아이디어를 변질시킨 저 끔찍한 괴물들을 낳은 것을 후회한다"며 자신의 발명을 한탄했다고 합니다. 그의 의도와는 달랐지만, 쇼핑몰은 1970년대와 80년대 미국 교외 문화의 가장 확실한 중심이자, 십 대들의 해방구, 그리고 중산층 가족의 주말 나들이 장소로 황금기를 누렸습니다.
4. 온라인 시대의 도전, 쇼핑몰은 어디로 가는가
다큐멘터리를 보고 난 후, 저는 제가 서 있는 이 거대한 쇼핑몰의 미래를 생각해보았습니다. 21세기, 온라인 쇼핑의 등장은 쇼핑몰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물건을 '사기' 위해 굳이 쇼핑몰에 갈 필요가 없어진 시대. 미국에서는 수많은 쇼핑몰이 문을 닫고 '죽은 쇼핑몰(Dead Mall)'이라는 이름의 유령 같은 공간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쇼핑몰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다시 한번 변신하고 있습니다. 이제 쇼핑몰은 단순히 물건을 파는 공간이 아닌, 다양한 *'경험'을 파는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제가 오늘 이곳에서 영화를 보고, 서점에서 시간을 보내고, 맛집을 찾아다녔던 것처럼, 현대의 쇼핑몰은 거대한 실내 놀이공원, 미술관, 도서관, 그리고 심지어 워터파크까지 품으며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변화는 '상업을 넘어선 공동체의 중심'을 꿈꿨던 빅터 그루엔의 최초의 비전과 다시 맞닿아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한 이상주의자의 꿈에서 시작되어, 소비의 대성당을 거쳐, 이제는 경험의 놀이터로 진화하고 있는 쇼핑몰. 여러분에게 쇼핑몰은 어떤 공간인가요? 그곳은 여전히 '쇼핑'을 위한 곳인가요, 아니면 또 다른 무언가를 위한 곳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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