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며칠 전, 동네의 오래된 골목길을 걷다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이발소의 삼색등을 보았습니다. 빨강, 파랑, 흰색의 나선이 만들어내는 그 익숙한 풍경 앞에서, 문득 이 상징이 대체 어디서 왔을까 하는 어린 시절의 궁금증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어릴 적에는 막연히 프랑스 국기 색깔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그럴듯한 근거는 없었죠. 이 호기심을 풀기 위해 저는 중세 시대의 일상을 다룬 BBC의 다큐멘터리 시리즈 <중세의 삶(Terry Jones' Medieval Lives)>을 다시 찾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가 정겹게만 느꼈던 이 삼색등이, 사실은 중세 시대 이발사가 외과의사를 겸하며 피를 뽑던, 섬뜩하고도 기묘한 의료 행위의 역사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목차

1. 수술하는 성직자와 머리 깎는 외과의사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중세 초기 유럽에서 의료 행위는 주로 수도원의 성직자들이 담당했습니다. 그들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의학 지식을 보존하고 있었고, 약초를 다루며 아픈 사람들을 돌보았습니다. 하지만 1163년, 교황 알렉산데르 3세는 "성직자는 피를 흘리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칙령을 내립니다. 신성한 성직자가 인간의 몸에 칼을 대고 피를 보는 것을 금지한 것입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종교적 신념이 어떻게 사회의 직업 분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는지 그 흥미로운 과정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피를 보는 수술이나 발치, 그리고 당시 만병통치약처럼 여겨졌던 '사혈(Bloodletting)' 시술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된 성직자들은, 자신들이 가진 의료 지식을 다른 이들에게 가르쳐주었습니다. 바로 당시 수도원의 머리를 깎아주던 이발사(Barber)들이었습니다. 이발사는 이미 면도칼과 가위 등 날카로운 도구를 능숙하게 다루었기 때문에, 간단한 외과 수술을 하기에 가장 적합한 이들이었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이발사-외과의사(Barber-Surgeon)'는 이후 수백 년간 머리를 깎는 일과 함께, 종기를 째고, 이를 뽑으며, 부러진 뼈를 맞추는 등 오늘날의 외과의사와 치과의사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게 됩니다.
2. 삼색등의 비밀, 피와 붕대 그리고 정맥
그렇다면 이발소의 상징인 삼색등은 어떻게 탄생했을까요? 그 비밀은 바로 '사혈' 시술 과정에 숨어 있었습니다. 당시 의사들은 질병의 원인이 몸속의 나쁜 피 때문이라고 믿었고, 피를 뽑아내면 병이 낫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사혈을 할 때, 환자는 혈관이 잘 보이도록 지팡이(Pole)를 꽉 쥐고 있어야 했습니다. 시술이 끝나면, 이발사-외과의사는 피 묻은 붕대를 깨끗이 빨아 그 지팡이에 널어 말렸습니다. 바람이 불면, 붉은 피가 묻은 흰 붕대가 지팡이를 감싸며 빙글빙글 돌아가는 듯한 모습이 연출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발소 삼색등의 원형입니다. 저는 이 사실을 알고 나서, 무심코 보았던 그 아름다운 나선이 사실은 피와 붕대가 뒤엉킨 섬뜩한 상징이었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즉, 흰색은 붕대를, 빨간색은 동맥의 피를 상징했던 것입니다. 이후 프랑스에서는 정맥의 피를 상징하는 파란색이 추가되어 오늘날 우리가 아는 삼색등이 완성되었습니다. 기둥 꼭대기에 있는 놋쇠 그릇은 거머리를 담아두던 용기나 피를 받아내던 그릇을, 바닥에 있는 그릇은 피가 바닥에 떨어지지 않도록 받치던 그릇을 상징한다고 하니, 이발소의 모든 상징이 '피'와 관련되어 있었던 셈입니다.
3. 의학과 이발의 분리, 상징만 남은 시대
수백 년간 이어져 온 '이발사-외과의사'의 시대는 18세기 근대 의학이 발전하면서 서서히 막을 내리게 됩니다. 해부학과 생리학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외과의사들이 등장했고, 이발사의 의료 행위는 점차 법적으로 금지되었습니다. 1745년 영국에서 외과의사 조합이 이발사 조합으로부터 공식적으로 분리되었고, 19세기 프랑스와 독일을 거치며 이발사는 더 이상 환자의 몸에 칼을 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을 보며, 하나의 직업이 어떻게 전문화되고 분화되는지 그 사회 발전의 과정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비록 이발사는 더 이상 수술을 하지 않게 되었지만, 그들의 가게 앞에는 여전히 삼색등이 돌아갔습니다. 이제 그 섬뜩한 기원은 잊히고, 삼색등은 오직 '이곳이 바로 머리를 깎는 곳'임을 알려주는 친숙한 상징으로만 남게 된 것입니다. 이발소는 더 이상 아픈 사람들이 찾는 곳이 아닌, 남자들이 머리를 깎고, 면도를 하며, 동네 소식을 나누는 *'남성들의 사랑방'이자 커뮤니티 공간으로 그 성격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4. 현대의 바버숍, 장인정신과 남성들의 아지트
다큐멘터리를 보고 난 후, 저는 동네 골목의 그 낡은 이발소를 다시 바라보았습니다. 이제는 미용실에 밀려 점점 사라져 가는 추억의 공간처럼 보이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바버숍(Barbershop)'이라는 이름으로 이발소 문화는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습니다. 클래식한 포마드 헤어스타일과 정교한 습식 면도를 제공하는 현대의 바버숍은, 단순히 머리를 자르는 곳을 넘어, 남성들만의 멋과 문화를 공유하는 특별한 아지트가 되었습니다. 저는 이 새로운 유행이, 어쩌면 수백 년 전 남성들의 소통과 교류의 중심이었던 이발소의 '공동체' 정신을 그리워하는 현대인들의 무의식적인 향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피를 뽑던 섬뜩한 기원에서 시작하여, 동네의 사랑방을 거쳐, 마침내 현대 남성들의 멋과 자부심을 상징하게 된 이발소 삼색등. 그 빙글빙글 돌아가는 나선 속에는 이처럼 수백 년에 걸쳐 진화해 온 의학과 문화, 그리고 남성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이발소는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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