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난 주말, 일주일치 식료품을 사기 위해 거대한 창고형 슈퍼마켓에 다녀왔습니다. 과일 코너에서 시작해 정육, 유제품 코너를 거쳐 공산품 진열대까지, 한 지붕 아래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원스톱 쇼핑'의 편리함은 이제 제 삶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문득 이 거대한 식료품 창고가 등장하기 전, 우리 부모님 세대는 어디서 어떻게 장을 봤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이 호기심을 풀기 위해 저는 20세기 소비 혁명의 역사를 다룬 마크 레빈슨의 책 『더 그레이트 A&P(The Great A&P and the Struggle for Small Business in America)』를 다시 찾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가 당연하게 누리는 이 슈퍼마켓이, 사실은 동네의 작은 가게들을 위협하는 '괴물'로 여겨졌던 시절을 지나, 우리의 쇼핑 습관과 식탁, 그리고 지역 공동체의 모습까지 완전히 바꾸어 놓은 위대한 혁명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목차
- 슈퍼마켓 이전의 풍경, 발품 팔던 시절의 장보기
- 클래런스 손더스의 혁명, '셀프서비스'의 탄생
- 자동차와 교외, 슈퍼마켓의 황금시대를 열다
- 우리 식탁의 지배자, 슈퍼마켓이 만든 세상
1. 슈퍼마켓 이전의 풍경, 발품 팔던 시절의 장보기
책에 따르면, 슈퍼마켓이 등장하기 전인 20세기 초까지 '장을 본다'는 행위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의미였습니다. 주부들은 고기를 사기 위해 정육점에 가고, 빵을 사기 위해 빵집에 들렀으며, 신선한 채소를 사기 위해 채소 가게에 가야 했습니다. 모든 상점은 카운터를 사이에 두고 손님과 주인이 마주 보는 형태였습니다. 손님은 원하는 물건을 말하고, 주인은 선반 뒤에서 물건을 꺼내 포장하고 계산해주었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상상하며, 당시의 장보기가 단순히 물건을 사는 행위를 넘어, 가게 주인과 안부를 묻고 동네 소식을 나누는 지역 공동체의 중요한 소통 방식이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방식은 매우 비효율적이었습니다. 여러 가게를 돌아다니며 발품을 팔아야 했고, 모든 것을 가게 주인의 추천과 정직함에 의존해야 했습니다. 가격은 흥정하기 나름이었고, 내가 직접 물건을 만져보고 비교하며 고를 수 있는 선택의 자유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더 편리하고, 더 저렴하며, 더 투명한 새로운 쇼핑 방식을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2. 클래런스 손더스의 혁명, '셀프서비스'의 탄생
이 수백 년간의 장보기 문화를 송두리째 바꾼 주인공은 미국의 혁신적인 사업가 클래런스 손더스(Clarence Saunders)였습니다. 그는 1916년 테네시주 멤피스에 '피글리 위글리(Piggly Wiggly)'라는 이상한 이름의 식료품점을 열었습니다. 이 가게는 이전의 모든 상점과 달랐습니다. 가게에 들어선 손님들은 카운터 대신, 가격표가 붙은 상품들이 끝없이 진열된 통로와 마주했습니다. 손님들은 입구에서 장바구니를 들고, 미로처럼 설계된 통로를 따라 걸으며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직접 선반에서 꺼내 담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셀프서비스(Self-Service)'라는 위대한 개념의 탄생입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주인이 쥐고 있던 선택의 권력을 소비자에게 넘겨준 이 발상이 얼마나 혁명적이었는지 깨닫고 감탄했습니다. 소비자들은 처음으로 자신의 눈으로 직접 상품을 비교하고, 가격을 확인하며, 충동적으로 새로운 상품을 장바구니에 담는 '쇼핑의 즐거움'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피글리 위글리는 점원을 줄여 인건비를 절약했고, 그 이익을 상품 가격 인하로 연결시켜 폭발적인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 성공은 곧 미국 전역에 셀프서비스 식료품점의 시대를 여는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3. 자동차와 교외, 슈퍼마켓의 황금시대를 열다
셀프서비스라는 혁신적인 개념은 20세기 중반, 두 가지 거대한 사회 변화와 만나면서 오늘날 우리가 아는 슈퍼마켓(Supermarket)으로 진화했습니다. 바로 자동차의 대중화와 교외(Suburb)의 확산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인들은 더 넓은 주거 공간을 찾아 도시를 떠나 교외로 이주하기 시작했고, 자동차는 이 새로운 삶의 필수품이 되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동네의 작은 가게에 얽매일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그들은 차를 몰고 나가, 넓은 주차장을 갖춘 거대한 매장에서 일주일치 식료품을 한꺼번에 구매하는 새로운 쇼핑 패턴을 만들어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며, 기술과 사회의 변화가 어떻게 우리의 생활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편하는지 그 거대한 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슈퍼마켓은 이러한 시대의 요구에 완벽하게 부응하는 공간이었습니다. 정육점, 빵집, 채소 가게를 한 지붕 아래로 모은 *'원스톱 쇼핑'은 소비자들에게 압도적인 편리함을 제공했고, 대량 구매를 통한 저렴한 가격은 동네의 작은 가게들이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경쟁력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편리함의 이면에는, 수십 년간 지역 공동체의 중심이었던 작은 가게들의 몰락과 단골 가게 주인이 건네던 따뜻한 정이 사라지는 안타까운 풍경이 있었습니다.
4. 우리 식탁의 지배자, 슈퍼마켓이 만든 세상
책을 덮고, 저는 제가 장을 봐온 물건들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습니다. 이제 슈퍼마켓은 단순히 물건을 파는 공간을 넘어, 우리의 식탁과 식문화 전체를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슈퍼마켓의 중앙 집중식 유통 시스템은 전 세계의 식재료를 우리 식탁으로 가져왔지만, 동시에 우리가 먹는 음식의 출처와 생산 과정에 대한 관심을 멀어지게 만들었습니다. '오늘의 특가 상품'과 '1+1 행사'는 우리의 메뉴를 결정하고, 아름답게 진열된 가공식품들은 우리의 미각을 길들입니다. 거대 슈퍼마켓 체인들은 농가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소수의 특정 품종만이 대량으로 재배되는 농업의 획일화를 부추기기도 합니다. 제가 무심코 카트에 담았던 이 물건들이, 사실은 거대한 유통 시스템이 설계한 선택의 결과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네 가게의 정겨운 대화에서 시작하여, 모든 것을 한 번에 해결하는 거대한 창고가 되기까지. 슈퍼마켓의 역사는 편리함과 효율성을 추구해 온 현대 사회의 명과 암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여러분이 오늘 저녁 장을 볼 그곳은, 여러분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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