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소한것들의 역사

보이지 않는 선이 세계를 움직이다, 바코드는 어떻게 유통의 혁명을 이끌었나

by handago-blog 2025. 9. 5.

얼마 전, 주말을 맞아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았습니다. 계산대 위에 물건들을 올려놓자, 점원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상품을 하나씩 가져가 '삑' 소리와 함께 스캐너를 통과시켰습니다. 그 짧은 순간에 상품의 정보와 가격이 화면에 뜨는 것을 보며, 문득 이 검고 하얀 선들의 조합, 바코드(Barcode)가 없던 시절에는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처리했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이 들었습니다.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 저는 현대 기술의 기원을 탐구하는 스티븐 존슨의 다큐멘터리 시리즈 <세상을 바꾼 아이디어(How We Got to Now)>를 다시 찾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가 무심코 지나쳤던 이 보이지 않는 선들이, 사실은 20세기 유통과 물류 시스템 전체를 바꾼, 조용한 혁명의 주인공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선이 세계를 움직이다, 바코드

목차

  1. '삑' 소리 이전의 세상, 가격표와의 전쟁
  2. 해변의 모래밭에서 떠오른 아이디어
  3. 모두를 위한 약속, 통일된 언어의 탄생
  4. 보이지 않는 선이 만든 투명한 세상

1. '삑' 소리 이전의 세상, 가격표와의 전쟁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바코드가 등장하기 전 슈퍼마켓의 계산대는 오늘날과 전혀 다른 풍경이었습니다. 모든 상품에는 직원이 직접 붙인 가격표가 붙어 있었고, 계산원은 각 상품의 가격을 눈으로 확인하고 일일이 금전 등록기에 입력해야 했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상상하며, 그 시절 계산원들이 겪었을 엄청난 스트레스와 비효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가격이 바뀌면 매장의 모든 관련 상품 가격표를 사람이 직접 교체해야 했고, 계산 과정에서 실수가 발생할 확률도 매우 높았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재고 관리였습니다. 어떤 상품이 얼마나 팔렸는지, 창고에는 무엇이 남아있는지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영업이 끝난 뒤 직원들이 밤을 새워 창고의 모든 물건을 손으로 일일이 세어야 했습니다. 이는 엄청난 시간과 노동력을 낭비하는 일이었고, 기업이 시장의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세상은 더 빠르고, 더 정확하며, 더 효율적인 새로운 시스템을 간절히 원하고 있었습니다.

2. 해변의 모래밭에서 떠오른 아이디어

이 거대한 문제를 해결한 혁신적인 아이디어의 시작은 놀랍게도 1940년대, 마이애미의 한 해변이었습니다. 필라델피아 드렉셀 공과대학의 대학원생이었던 버나드 실버(Bernard Silver)는 우연히 한 식품 체인점 사장이 '계산대에서 상품 정보를 자동으로 읽는 방법'을 연구해달라고 학장에게 부탁하는 것을 엿듣게 됩니다. 이 문제에 매료된 그는 동료였던 노먼 조지프 우들랜드(Norman Joseph Woodland)와 함께 연구에 착수합니다. 우들랜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심하던 중, 할아버지가 모스 부호를 가르쳐주었던 기억을 떠올립니다. 점과 선으로 정보를 표현하는 모스 부호. 그는 이 부호를 길게 늘어뜨려 굵고 가는 선으로 바꿀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1949년, 그는 마이애미 해변의 모래 위에 손가락으로 모스 부호를 바탕으로 한 네 개의 선을 그었고, 마침내 세계 최초의 바코드에 대한 영감을 얻게 됩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위대한 발명이란 것이 거창한 실험실이 아니라, 해변의 모래밭처럼 평범한 공간에서, 서로 다른 아이디어(모스 부호와 계산 문제)가 연결되는 순간 탄생한다는 사실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들의 첫 아이디어는 동심원 모양의 '불스아이(Bull's-eye)' 코드였지만, 이 아이디어는 훗날 우리가 아는 직선 바코드의 중요한 시초가 되었습니다.

3. 모두를 위한 약속, 통일된 언어의 탄생

우들랜드와 실버의 발명은 훌륭했지만, 바코드가 세상을 바꾸기까지는 еще 20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바코드가 진정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모든 제조업체와 유통업체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통일된 표준(Universal Standard)'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각자 다른 방식의 바코드를 사용한다면, 그것은 바코드가 없던 시절의 혼돈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1970년대 초, IBM의 엔지니어였던 조지 로러(George Laurer)는 우들랜드의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사각형 모양의 UPC(Universal Product Code) 심볼을 설계했습니다. 그리고 1973년, 마침내 미국의 식료품 업계는 이 UPC를 업계 표준으로 채택하기로 합의합니다. 저는 이 부분을 보며, 기술의 성공은 종종 기술 그 자체보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경쟁자들이 '공동의 이익'을 위해 약속하고 협력하는 사회적 합의의 과정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1974년 6월 26일 아침 8시 1분, 오하이오 주의 한 슈퍼마켓에서 역사적인 순간이 탄생합니다. 한 쇼핑객이 집어 든 리글리(Wrigley's) 껌 한 통이 계산대의 스캐너를 통과하며, 인류 역사상 최초로 바코드로 판매된 상품으로 기록되었습니다.

4. 보이지 않는 선이 만든 투명한 세상

다큐멘터리를 보고 난 후, 저는 마트 계산대의 '삑' 소리를 더 이상 평범하게 들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바코드의 발명은 단순히 계산 속도만 빠르게 만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코드는 유통과 물류 시스템 전체를 투명하게 만들었습니다. 기업들은 이제 어떤 상품이, 언제, 어디서, 얼마나 팔리는지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되었고, 이를 통해 수요를 예측하고 재고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적시생산(Just-in-Time)'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거대한 할인점과 온라인 쇼핑, 그리고 글로벌 물류 시스템의 가장 기본적인 토대가 되었습니다. 바코드는 이제 슈퍼마켓을 넘어, 도서관의 책, 병원의 환자 손목 밴드, 공항의 수하물, 그리고 우리가 받는 택배 상자까지, 세상의 모든 것을 식별하고 추적하는 보편적인 언어가 되었습니다. 저는 이 보이지 않는 선들이 사실은 현대 사회의 복잡한 움직임을 지탱하는 질서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발명가의 해변에서의 작은 상상에서 시작된 바코드. 그 평범한 흑백 줄무늬 속에, 이처럼 세상을 움직이는 거대한 혁명의 역사가 담겨 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으신가요?

 

세상을 연결한 작은 종이, 우표는 어떻게 국가의 얼굴이 되었나

오래된 보관함을 정리하다가 어릴 적 취미로 모았던 요즘은 보기 힘든 우표 수집 앨범을 발견했습니다.네모난 종이 조각 안에 담긴 각국의 풍경과 인물들. 어린 시절 저에게 우표는 먼 나라에

handag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