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소한것들의 역사

더 많이 사게 만드는 발명품, 쇼핑카트는 어떻게 소비를 디자인했나

by handago-blog 2025. 9. 7.

주말이 되면 습관처럼 대형마트로 향합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저는 아무 생각 없이 철제 쇼핑카트 하나를 꺼내 '철컥' 소리를 내며 밀기 시작합니다. 텅 빈 카트 안을 바라보며 '오늘은 뭘로 이 공간을 채울까?' 생각하는 이 행위는 너무나도 당연한 쇼핑의 시작입니다. 하지만 문득 이 평범한 카트가 사실은 우리가 '필요한 것' 이상으로 '더 많이' 사도록 교묘하게 설계된, 20세기 가장 위대한 소비 발명품 중 하나였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 저는 소비 공간과 인간 행동의 관계를 분석한 파코 언더힐의 명저 『쇼핑의 과학(Why We Buy)』을 다시 펼쳐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가 무심코 미는 이 쇼핑카트가, 사실은 현대인의 소비 습관과 슈퍼마켓의 풍경 전체를 디자인한, 보이지 않는 혁명의 주인공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더 많이 사게 만드는 발명품, 쇼핑카트

 

목차

  1. 바구니의 한계, '충분히'만 사던 시절
  2. 한 남자의 관찰, 접이식 의자에서 탄생한 발명품
  3. 어색한 발명품을 위한 심리 마케팅
  4. 카트가 만든 세상, 계획되지 않은 소비의 시대

1. 바구니의 한계, '충분히'만 사던 시절

책에 따르면, 쇼핑카트가 등장하기 이전의 쇼핑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경험이었습니다. 초기의 식료품점은 손님이 카운터에서 원하는 물건을 말하면 점원이 직접 선반에서 꺼내주는 방식이었습니다. 이후 손님이 직접 물건을 고르는 '셀프서비스' 개념의 슈퍼마켓이 등장했지만, 그때도 사람들은 팔에 걸 수 있는 작은 철제 바구니를 사용했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상상하며, 그 시절 쇼핑의 물리적인 한계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람은 들 수 있는 무게에 한계가 있습니다. 바구니가 무거워지면, 설령 더 사고 싶은 물건이 있더라도 쇼핑을 멈추고 계산대로 향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즉, 쇼핑의 규모는 전적으로 소비자의 팔 힘에 의해 결정되었습니다. 이는 상점 주인에게는 엄청난 기회손실이었습니다. 고객들이 더 많은 물건을 살 의향이 있어도, 그것을 담을 방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소비는 '원하는 만큼'이 아니라 '들 수 있는 만큼'으로 제한되었던, 어찌 보면 지금보다 훨씬 더 계획적이고 소박했던 시대였습니다.

2. 한 남자의 관찰, 접이식 의자에서 탄생한 발명품

이 물리적인 한계를 돌파하고 소비의 새로운 시대를 연 주인공은 1930년대 미국 오클라호마에서 '험프티 덤프티'라는 슈퍼마켓 체인을 운영하던 *실반 골드만(Sylvan Goldman)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가게에서 쇼핑하는 고객들을 유심히 관찰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무거운 장바구니 때문에 인상을 찌푸리거나, 아이를 한 손에 안고 다른 한 손으로 힘겹게 바구니를 든 채 쇼핑을 포기하고 돌아가는 고객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고객이 더 편하게, 더 많이 쇼핑하게 할 방법은 없을까?'를 밤낮으로 고민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그는 사무실에서 우연히 놓여 있던 접이식 의자 두 개를 보게 됩니다. 그는 의자 위에 바구니를 하나씩 올려놓고, 의자 다리 아래에 바퀴를 붙이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위대한 발명이란 것이 복잡한 기술이 아닌, 인간의 불편함에 대한 깊은 공감과 일상적인 사물을 새롭게 연결하는 창의적인 관찰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는 정비공과 함께 나무와 철사를 이용해 투박한 첫 번째 쇼핑카트를 만들었고, 1937년 6월 4일, 마침내 자신의 가게에서 인류 최초의 쇼핑카트를 선보였습니다.

3. 어색한 발명품을 위한 심리 마케팅

골드만의 혁신적인 발명품에 대한 고객들의 첫 반응은, 그러나, 처참한 실패였습니다. 남자들은 "내가 그렇게 약해 보이냐"며 여자들이나 미는 유모차 같다며 사용을 거부했습니다. 여자들은 이미 평생 한 손으로 장바구니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 아이를 돌보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고, 유모차를 미는 것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카트 밀기를 어색해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며, 아무리 훌륭한 발명품이라도 사람들의 뿌리 깊은 습관과 고정관념을 바꾸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골드만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기술이 아닌, 인간의 심리를 이용한 천재적인 마케팅 전략을 구사합니다. 그는 다양한 연령대의 남녀 모델들을 고용하여, 마치 실제 쇼핑객인 것처럼 위장시켜 자신의 가게에서 하루 종일 쇼핑카트를 밀고 다니게 했습니다. 젊은 여성, 나이 든 신사, 아이를 둔 주부 등 '가짜 손님'들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편리하게 카트를 사용하는 모습을 본 실제 고객들은, 점차 경계심을 풀고 하나둘씩 카트를 밀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다른 사람을 따라 하고 싶은' 인간의 본능을 이용한, 오늘날 '사회적 증거(Social Proof)' 마케팅의 위대한 원형이었습니다.

4. 카트가 만든 세상, 계획되지 않은 소비의 시대

책을 덮고, 저는 제가 밀고 있던 거대한 쇼핑카트를 다시 한번 바라보았습니다. 골드만의 발명품은 곧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가며 쇼핑의 풍경을 완전히 바꾸었습니다. 쇼핑카트의 등장은 슈퍼마켓의 대형화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더 이상 좁은 통로에 얽매일 필요 없이, 매장은 더 넓은 통로와 더 많은 상품을 진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큰 변화는 소비자의 구매 습관에서 일어났습니다. 두 손의 자유와 거대한 적재 공간을 얻게 된 소비자들은, 이제 구매 목록에 없던 상품도 '일단 카트에 담고 보자'는 식으로 계획되지 않은 충동구매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쇼핑카트의 크기가 클수록 소비자들은 그 빈 공간을 채우려는 무의식적인 압박을 느껴 더 많은 돈을 쓴다고 합니다. 제가 무심코 밀던 이 텅 빈 카트가, 사실은 저의 지갑을 열기 위해 정교하게 설계된 '욕망의 그릇'이었던 셈입니다. 한 남자의 작은 관찰에서 시작된 쇼핑카트. 그 평범한 철제 바구니가 오늘날 우리의 소비 문화를 어떻게 디자인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니, 앞으로 마트에 갈 때마다 그 입구에서 잠시 멈칫하게 될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쇼핑카트에는, 계획된 소비와 계획되지 않은 욕망 중 어느 쪽이 더 많이 담겨 있나요?

 

 

'나중에 내도 된다'는 약속, 신용카드가 소비 사회를 만든 과정

우리는 카페에서 커피를 사고, 온라인으로 옷을 주문하며, 마트에서 장을 볼 때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지갑에서 작은 플라스틱 카드 한 장을 꺼내 듭니다. '결제는 카드로 할게요.' 이 한마디와

handag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