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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것들의 역사

카펫 위의 먼지와의 전쟁, 진공청소기는 어떻게 가사 노동을 바꾸었나

by handago-blog 2025. 9. 8.

요즘은 집안 청소를 할 때 가볍고 강력한 무선 청소기를 사용해서 집 안 구석구석을 청소합니다. 먼지통을 비우고 충전 거치대에 탁 하고 거치하는 이 모든 과정은 10분도 채 걸리지 않습니다. 이토록 손쉬운 청소를 끝내고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던 저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편리한 기계가 없던 시절, 우리 할머니의 할머니 세대는 어떻게 이 끝없는 먼지와의 전쟁을 치러냈을까?'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 저는 가사 노동과 기술의 관계를 파헤친 루스 슈워츠 코완의 명저 『엄마에겐 더 많은 일이 생겼다(More Work for Mother)』를 다시 펼쳐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가 무심코 사용하는 이 진공청소기가, 단순히 먼지를 빨아들이는 기계를 넘어, 여성들을 끔찍한 중노동에서 해방시킨 위대한 발명품이자, 동시에 '완벽한 청결'이라는 새로운 굴레를 씌운, 두 얼굴의 혁명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카펫 위의 먼지와의 전쟁, 진공청소기

 

목차

  1. '카펫 비팅'의 시대, 먼지는 보이지 않는 적이었다
  2. 거대한 괴물의 등장, '부는 것'이 아닌 '빠는 것'의 발상 전환
  3. 한 천식 환자의 발명품, 진공청소기가 집 안으로 들어오다
  4. 청결 혁명과 새로운 굴레, 가사 노동의 두 얼굴

1. '카펫 비팅'의 시대, 먼지는 보이지 않는 적이었다

책에 따르면, 진공청소기가 등장하기 전인 19세기 가정의 가장 큰 적은 바로 카펫(Carpet)이었습니다. 당시 중산층 가정의 부와 안락함을 상징했던 카펫은, 동시에 온갖 먼지와 진드기, 세균을 품고 있는 거대한 위생의 사각지대였습니다. 이 카펫을 청소하는 유일한 방법은 남자 하인이나 장정 여럿이 카펫을 뜯어내 마당으로 끌고 나간 뒤, 온 힘을 다해 먼지가 나오지 않을 때까지 종일 두들기는 '카펫 비팅(Carpet Beating)'이었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상상하며, 그 시절 주부들이 느꼈을 깊은 절망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카펫을 한번 청소하는 것은 집안 전체를 뒤엎는 대공사였고, 그렇게 힘들게 청소해도 먼지는 금세 다시 쌓였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먼지가 단순히 더러운 것이 아니라, 결핵과 같은 무서운 질병을 옮기는 보이지 않는 적이라는 공포에 시달렸습니다. 19세기 말, 사회적으로 위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 지긋지긋한 먼지와의 전쟁을 끝내줄 새로운 기술에 대한 갈망은 그 어느 때보다도 커져만 갔습니다.

2. 거대한 괴물의 등장, '부는 것'이 아닌 '빠는 것'의 발상 전환

먼지를 해결하려는 초기의 발명품들은 대부분 압축 공기를 이용해 먼지를 한쪽으로 '불어내는(Blowing)' 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먼지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 미봉책에 불과했습니다. 이 거대한 문제의 물꼬를 튼 것은 1901년, 영국의 교량 설계 기술자였던 휴버트 세실 부스(Hubert Cecil Booth)의 위대한 발상 전환이었습니다. 그는 기차 좌석의 먼지를 바람으로 불어내는 장치의 시연을 보다가 문득 생각했습니다. '불어내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빨아들이면(Sucking) 어떨까?' 그는 이 아이디어를 증명하기 위해, 레스토랑 의자 위에 손수건을 놓고 입으로 힘껏 빨아들이는 기이한 실험을 감행했습니다. 손수건에 먼지가 새까맣게 묻어나는 것을 확인한 그는, 이것이 세상을 바꿀 발명임을 직감했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위대한 혁신이란 것이 복잡한 계산이 아닌, 문제를 정반대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단순한 생각의 전환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부스가 만든 최초의 진공청소기 '퍼핑 빌리(Puffing Billy)'는 마차에 싣고 다녀야 하는 거대한 가솔린 엔진 괴물이었습니다. 청소를 하려면 이 괴물을 집 밖에 세워두고, 긴 호스를 창문으로 넣어 집 안의 먼지를 빨아들여야 했습니다. 비록 부유층만 이용할 수 있는 비싼 서비스였지만, '진공'으로 '청소'한다는 개념을 세상에 처음 선보인 위대한 첫걸음이었습니다.

3. 한 천식 환자의 발명품, 진공청소기가 집 안으로 들어오다

거대한 괴물이었던 진공청소기를 모든 가정의 친구로 만든 주인공은 미국 오하이오주의 한 백화점에서 야간 경비원이자 청소부로 일하던 제임스 머레이 스팽글러(James Murray Spangler)였습니다. 그는 심한 천식을 앓고 있었는데, 매일 밤 카펫 먼지를 쓸고 닦는 일을 반복하면서 병세가 점점 악화되었습니다. 생존의 위협을 느낀 그는, 1907년 버려진 선풍기 모터와 비누 상자, 베갯잇, 그리고 빗자루 손잡이를 이용해 인류 최초의 휴대용 전기 진공청소기를 만들어냈습니다. 그의 발명품은 투박했지만, 먼지를 빨아들이는 동시에 회전 브러시로 카펫 깊숙한 곳의 먼지를 두드려 빼내는 혁신적인 방식이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며, 스팽글러의 발명이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고통을 해결하려는 한 인간의 절박한 생존 본능에서 탄생했다는 점에 숙연해졌습니다. 스팽글러는 자금 부족으로 사업에 어려움을 겪던 중, 자신의 발명품을 사촌의 남편이었던 가죽 제품 사업가 윌리엄 후버(William Hoover)에게 보여주었습니다. 후버는 이 기계의 엄청난 잠재력을 즉시 간파하고 특허권을 사들여, 1908년 '후버(Hoover)'라는 이름의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후버는 '방문 판매'라는 혁신적인 마케팅을 통해, 주부들에게 직접 진공청소기의 놀라운 성능을 시연하며 미국 전역에 '청결 혁명'의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4. 청결 혁명과 새로운 굴레, 가사 노동의 두 얼굴

책을 덮고, 저는 제 손에 들린 가벼운 무선 청소기를 다시 한번 바라보았습니다. 진공청소기의 등장은 의심할 여지 없이 여성들을 '카펫 비팅'이라는 끔찍한 중노동에서 해방시킨 위대한 혁명이었습니다. 이전에는 1년에 한두 번 하던 대청소를, 이제는 매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집 안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해졌고, 먼지로 인한 질병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루스 슈워츠 코완은 바로 이 지점에서 기술의 역설을 지적합니다. 진공청소기는 청소라는 노동을 '더 쉽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사회가 요구하는 '청결의 기준'을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여놓았습니다. 이제 주부들은 '적당히 깨끗한' 집이 아니라, '먼지 한 톨 없는 완벽하게 깨끗한' 집을 유지해야 한다는 새로운 사회적 압박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기술의 발전이 노동의 '양'을 줄여준 것이 아니라, 노동의 '성격'을 바꾸고 새로운 기대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제가 무심코 사용하는 이 진공청소기가, 이처럼 여성의 삶을 해방시킨 동시에 또 다른 굴레를 씌운, 두 얼굴의 역사를 품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으신가요? 여러분의 손에 들린 청소 도구는, 여러분을 자유롭게 하나요, 아니면 더 높은 청결의 기준 속에 가두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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