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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것들의 역사

아름다움을 위한 고통의 도구, 코르셋이 옥죄었던 여성의 몸과 정신

by handago-blog 2025. 7. 27.

역사 속 여성들의 초상화를 보면, 비현실적으로 가느다란 허리와 풍만한 가슴, 곧게 뻗은 상체를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인간의 몸이 이토록 완벽한 '모래시계' 형태를 가질 수 있었을까요? 그 비밀은 드레스 안에 숨겨진 보이지 않는 갑옷, 바로 코르셋(Corset)에 있습니다. 수백 년간 서양 여성들의 몸을 지배했던 코르셋은 당대 최고의 아름다움을 완성하는 필수품이자, 여성이라면 마땅히 갖춰야 할 미덕의 상징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완벽한 실루엣의 이면에는 숨 막히는 고통과 뒤틀린 장기, 그리고 여성의 자유로운 활동을 억압했던 잔혹한 역사가 숨어있습니다. 어떻게 이 아찔한 고통의 도구가 그토록 오랫동안 여성들의 열망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까요?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 저는 예전에 인상 깊게 보았던 BBC의 다큐멘터리 <패션의 역사>를 다시 찾아보았습니다. 지금부터 저의 이 작은 호기심에서 시작된, 코르셋의 잔혹하고도 매혹적인 역사를 함께 따라가 보겠습니다.

아름다움을 위한 고통의 도구, 코르셋

 

 

1. 이상적인 미의 구현, 코르셋의 탄생과 목적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코르셋의 역사는 16세기 유럽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스페인 궁정에서 시작된 초기 형태의 코르셋은 고래수염이나 단단한 나무, 철골을 덧대어 만든, 갑옷에 가까운 딱딱한 보정 속옷이었습니다. 그 주된 목적은 상체를 원뿔 형태로 만들어 가슴을 평평하게 누르고 허리를 가늘게 조여, 당시 유행하던 원피스 드레스의 실루엣을 완벽하게 구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시대에 따라 유행하는 실루엣이 변하면서 코르셋의 형태도 함께 진화했습니다.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에 이르러 코르셋은 그 절정을 맞이합니다. 이 시대의 이상적인 여성상은 극단적으로 가는 허리와 풍만한 가슴, 그리고 잘록한 허리에서부터 풍성하게 퍼지는 엉덩이 라인을 가진 'S-커브' 실루엣이었습니다. 이 비현실적인 몸매를 만들기 위해, 여성들은 어릴 때부터 코르셋을 착용하여 자신의 몸을 '미의 기준'이라는 틀에 맞춰 억지로 변형시켜야 했습니다. 코르셋을 착용하는 것은 단순히 미적인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상류층 여성으로서의 정숙함과 교양, 그리고 자기 통제력을 보여주는 사회적 의무였습니다. 코르셋으로 꼿꼿하게 편 허리는 나태하지 않은 올바른 정신 상태를 상징했고, 제대로 조이지 않은 코르셋은 '품행이 단정치 못한 여성'이라는 낙인으로 이어졌습니다.

 

2. 보이지 않는 감옥, 코르셋이 옥죈 여성의 몸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향한 대가는 참혹했습니다. 여성들은 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허리를 졸라맸고, 이로 인해 만성적인 소화불량과 변비, 잦은 졸도에 시달렸습니다. 장기간의 착용은 갈비뼈를 변형시키고, 폐와 간, 위와 같은 내부 장기들을 본래의 위치에서 밀어내 심각한 건강 문제를 유발했습니다. 코르셋은 여성의 물리적인 몸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 자체를 옥죄는 '보이지 않는 감옥'이었습니다. 코르셋을 꽉 조인 상태에서는 허리를 굽히거나, 빨리 걷거나, 깊은숨을 쉬는 것과 같은 기본적인 활동조차 어려웠습니다. 이는 자연스럽게 여성의 활동 반경을 실내로 제한하고, 스포츠나 전문적인 직업 활동과 같은 공적인 영역으로의 진출을 막는 물리적인 장벽으로 작용했습니다. 즉, 코르셋은 여성을 연약하고 수동적이며, 남성의 보호가 필요한 존재로 만드는 사회적 장치였던 셈입니다. 당시 일부 의사들은 코르셋의 의학적 위험성을 끊임없이 경고했지만, 아름다움을 향한 여성들의 욕망과 사회적 압력은 너무나도 강력해서 이러한 경고는 대부분 무시되었습니다. 여성들은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고통을 감내하며, 스스로를 '미'라는 이름의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3. 코르셋 벗어던지기, 여성 해방과 복식 개혁

19세기 말,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코르셋은 여성 억압의 가장 강력한 상징으로 지목되었습니다.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을 비롯한 진보적인 여성들은 "여성의 몸을 해방시켜야 정신도 해방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복식 개혁 운동'을 펼쳤습니다. 그들은 코르셋을 벗어던지고, 몸을 조이지 않는 편안하고 실용적인 옷을 입을 권리를 외쳤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프랑스의 디자이너 폴 푸아레(Paul Poiret)는 1906년, 코르셋을 완전히 제거하고 허리선이 가슴 바로 아래에 있는 '엠파이어 스타일'의 드레스를 선보이며 패션계에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그의 디자인은 여성의 몸을 인위적인 틀에서 해방시킨, 현대적인 의복의 시작으로 평가받습니다. 또한, 제1차 세계대전은 코르셋의 종말을 앞당기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남성들이 전쟁터로 떠난 자리를 여성들이 채우면서, 그들은 공장과 농장에서 활동적인 노동을 해야 했습니다. 더 이상 몸을 옥죄는 코르셋은 거추장스러운 구시대의 유물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전쟁 물자로 금속이 부족해지자, 미국 정부가 여성들에게 코르셋을 기부받아 전함 2척을 만들었다는 일화는, 코르셋의 시대가 어떻게 막을 내렸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4. 현대에 부활한 코르셋, 억압인가 자기표현인가

수십 년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던 코르셋은 21세기에 들어 다시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습니다. 마돈나, 레이디 가가와 같은 팝 아이콘들이 무대 의상으로 코르셋을 활용했고, 최근에는 '코르셋 톱'이나 '웨이스트 트레이너'와 같은 아이템들이 패션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대에 부활한 코르셋은 과거와는 다른 의미를 지닙니다. 과거의 코르셋이 사회가 강요하는 미의 기준에 맞추기 위한 '억압'의 도구였다면, 오늘날의 코르셋은 자신의 몸을 주체적으로 드러내고 개성을 표현하는 '자기표현'의 수단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남성적 시선에 맞춘 수동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강하고 당당한 여성성을 과시하는 도구라는 것입니다. 물론, 여전히 일각에서는 이러한 트렌드가 과거의 억압적인 미의 기준을 다시 불러오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합니다. 이처럼 코르셋의 역사는 시대를 막론하고 여성의 몸을 둘러싼 사회적 시선과 욕망, 그리고 억압과 해방의 투쟁이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여러분은 현대의 코르셋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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