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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것들의 역사

왜 여성의 옷에는 주머니가 없었을까? 주머니가 말해주는 권력의 역사

by handago-blog 2025. 7. 27.

얼마 전, 새로 산 재킷을 입고 외출했다가 무심코 손을 주머니에 넣으려다 당황한 경험이 있습니다. 분명 주머니처럼 보이는 디자인인데, 손을 넣어보니 얕거나 아예 바느질로 막혀있는 '가짜 주머니'였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아마 한 번쯤은 겪어보셨을 이 사소한 불편함. 저는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왜 유독 여성복에는 주머니가 없거나 이렇게 장식용으로만 달려 있을까?"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저는 최근에 본 BBC의 패션 다큐멘터리 <옷을 통해 본 역사(A History Through Clothes)>를 다시 돌려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작은 주머니의 유무가 단순한 디자인의 문제가 아니라, 수백 년에 걸친 남성과 여성의 사회적 지위, 경제적 독립, 그리고 자유에 대한 거대한 역사를 담고 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지금부터 저의 이 작은 호기심에서 시작된, 주머니가 말해주는 놀라운 권력의 역사를 함께 따라가 보려 합니다.

왜 여성의 옷에는 주머니가 없었을까? 주머니

1. 주머니의 탄생, 남성만의 '은밀한 공간'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애초에 옷에는 주머니가 없었습니다. 고대부터 중세까지 남녀 모두 허리띠에 작은 가죽 주머니나 자루를 매달아 개인 소지품을 보관했습니다. 이것은 외부로 드러나는, 누구든 볼 수 있고 심지어 훔쳐 가기도 쉬운 형태였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주머니 혁명'은 17세기 유럽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재단 기술이 발전하면서, 옷의 안쪽으로 주머니를 재봉해 넣는 방식이 등장한 것입니다. 이 새로운 형태의 주머니는 남성복, 특히 바지와 조끼에 가장 먼저 적용되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소지품을 보관하는 방식의 변화가 아니었습니다. 옷 안으로 들어간 주머니는 외부로부터 보이지 않는, 오직 소유자만이 접근할 수 있는 '사적이고 은밀한 공간'이 되었습니다. 남성들은 이 새로운 주머니에 돈, 서류, 회중시계, 무기 등 자신의 경제력과 사회적 활동에 필요한 중요한 물건들을 안전하게 휴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즉, 주머니는 공적인 영역에서 활동하는 남성들의 자유로운 이동성과 경제적 독립성, 그리고 프라이버시를 상징하는 강력한 도구가 된 것입니다. 주머니를 가진 남성은 두 손을 자유롭게 쓰며 세상을 활보할 수 있는, 근대적 개인의 탄생을 예고하는 존재였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2. 실루엣의 희생양, 주머니를 빼앗긴 여성들

남성들이 옷 속에 자신만의 비밀스러운 공간을 확보해 나갈 때, 여성들의 상황은 정반대였습니다. 여성복에는 옷과 통합된 주머니가 생겨나지 않았습니다. 대신 여성들은 여전히 허리끈에 매달아 속치마와 드레스의 풍성한 주름 아래에 숨기는 형태의 '독립형 주머니(tie-on pockets)'를 사용해야 했습니다. 이는 물건을 꺼내기 위해 겉치마를 들춰야 하는 매우 번거롭고 비효율적인 방식이었습니다. 왜 여성복에는 주머니를 달아주지 않았을까요? 당시 사회가 내세운 가장 큰 이유는 '미학'이었습니다. 주머니에 물건을 넣어 불룩하게 튀어나오는 것은 여성의 아름다운 신체 곡선, 즉 이상적인 실루엣을 망친다고 여겨졌습니다. 여성의 몸은 실용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주체가 아니라, 남성적 시선에 의해 감상되는 아름다운 대상이어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더 깊은 사회적 의미가 숨어있었습니다. 주머니가 없다는 것은 여성이 독립적으로 소유할 만한 중요한 재산이나 서류가 없으며, 공적인 활동을 할 필요가 없다는 사회적 통념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었습니다. 여성의 활동 반경은 집 안으로 제한되었고, 외출 시 필요한 소지품은 18세기 말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작은 손가방 '레티큘(reticule)'에 담아야 했습니다. 주머니를 빼앗긴 여성들은 두 손의 자유를 빼앗겼고, 자신의 소지품마저 타인에게 의존하거나 외부로 드러내야 하는, 남성과는 다른 차원의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3. 주머니를 향한 투쟁, 여성 해방의 상징이 되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주머니는 중요한 정치적 상징으로 떠올랐습니다.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 즉 서프러제트(Suffragettes)들은 거추장스러운 드레스 대신 실용적인 옷을 입고 거리로 나섰습니다. 그들에게 주머니는 단순한 수납공간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남성들과 동등하게 사회 활동에 참여하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선언이었습니다. 1910년 '뉴욕 타임스'의 한 기사는 "여성들이 참정권을 얻게 되면, 그들은 옷에 더 많은 주머니를 달게 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습니다. 주머니를 갖는다는 것은 곧 공적인 삶에 대한 접근권과 자유를 의미했기 때문입니다. 두 차례의 세계 대전 또한 여성복에 주머니를 가져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남성들이 전쟁터로 떠난 자리를 여성들이 채우면서, 그들은 공장에서, 농장에서 남성들의 옷이었던 작업복과 유니폼을 입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그 옷에는 크고 실용적인 주머니가 달려 있었습니다. 노동 현장에서 주머니의 편리함을 경험한 여성들은 더 이상 주머니 없는 불편한 삶으로 돌아가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이처럼 주머니를 향한 여성들의 열망은 곧 자신들의 사회적 역할 확대와 독립을 향한 투쟁의 역사와 그 궤를 같이했습니다.

4. 가짜 주머니의 정치학, 끝나지 않은 이야기

그렇다면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날, 여성들은 주머니의 자유를 완전히 쟁취했을까요?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전히 많은 여성복 바지나 재킷에는 손조차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 작고 얕은 주머니가 달려 있거나, 심지어 주머니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막혀있는 '가짜 주머니(fake pockets)'가 달려 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왜 이런 일이 계속되는 것일까요? 패션 업계는 여전히 '매끈한 실루엣'이라는 미학적 이유를 내세웁니다. 또한, 옷에 기능적인 주머니를 만드는 것이 더 많은 공정과 비용을 요구한다는 경제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교묘한 이유는 아마도 핸드백 산업과의 공생 관계일 것입니다. 옷에 제대로 된 주머니가 없다면, 여성들은 자신의 소지품을 넣기 위해 반드시 핸드백을 구매해야 합니다. 즉, 여성복의 '주머니 없는 디자인'이 거대한 핸드백 시장을 유지시키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현대 여성이 겪는 주머니의 부재 혹은 불편은, 과거로부터 이어진 '여성의 몸은 실용성보다 미학'이라는 편견과 자본주의의 논리가 결합된 결과물입니다. 작고 사소해 보이는 주머니 하나. 하지만 그 속에는 이처럼 남성의 특권에서 시작해 여성의 독립을 향한 투쟁, 그리고 여전히 남아있는 미묘한 차별의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당신의 옷에 달린 주머니는, 지금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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