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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것들의 역사

판관의 표정에서 스타의 신비감으로, 선글라스는 어떻게 시선을 지배했나

by handago-blog 2025. 9. 22.

화창한 오후, 외출 준비를 하며 거울 앞에서 여러 선글라스를 써보았습니다. 얼굴형에 맞는 것을 고르고, 오늘 입은 옷과 어울리는지 확인하는 이 행위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상입니다. 문득 이 어두운 렌즈 뒤에 제 시선을 숨기는 것이 단순히 햇빛을 가리는 기능 때문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글라스를 쓰는 순간, 왠지 모를 신비감과 자신감이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 저는 디자인이 인간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 다큐멘터리 시리즈 <앱스트랙트: 디자인의 미학(Abstract: The Art of Design)>을 다시 찾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가 패션 아이템으로만 여겼던 이 선글라스가, 사실은 판관의 속내를 감추는 도구에서 시작하여, 오늘날 스타들의 아우라를 완성하고 우리의 시선을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상징이 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판관의 표정에서 스타의 신비감으로, 선글라스

목차

  1. 태양을 피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판관의 포커페이스
  2. 푸른 안경과 비행사, 기능으로 무장하다
  3. 할리우드의 탄생, 선글라스가 신비감을 입다
  4. 시선의 권력, '보는 나'와 '보여지는 나'

1. 태양을 피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판관의 포커페이스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인류 최초의 '색안경'은 햇빛을 가리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그 놀라운 기원은 12세기 중국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중국의 판관(오늘날의 판사)들은 재판 과정에서 증인의 증언을 들을 때 자신의 표정이나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연수정(Smoky Quartz)을 얇게 갈아 만든 어두운 안경을 썼다고 합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선글라스의 본질이 '보는 것'을 돕는 기능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보여주지 않는 것'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흥미로웠기 때문입니다. 판관은 이 어두운 렌즈 뒤에 자신의 시선을 숨김으로써, 증인이나 피고인에게 자신의 생각을 읽히지 않고 공정한 판결을 내릴 수 있는 권위를 확보했습니다. 이는 선글라스가 처음부터 '시선의 권력'과 깊은 관련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내 눈은 상대를 뚜렷하게 볼 수 있지만, 상대는 나의 눈을 볼 수 없는 비대칭적인 관계. 이 관계 속에서 선글라스를 쓴 사람은 심리적 우위를 점하게 됩니다. 이처럼 선글라스는 태양을 가리기 훨씬 이전부터, 인간의 감정을 가리는 가장 오래된 도구였던 셈입니다.

2. 푸른 안경과 비행사, 기능으로 무장하다

어두운 렌즈가 본격적으로 '시력 보호'라는 기능과 만난 것은 18세기 유럽이었습니다. 당시 매독 치료에 사용되던 수은 요법의 부작용으로, 환자들은 극심한 눈부심(광과민증)에 시달렸습니다. 이들을 위해 의사들은 푸른색이나 녹색 렌즈를 처방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바로 현대 선글라스의 직접적인 조상 격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선글라스가 결정적으로 '기능성'과 '스타일'을 겸비하게 된 것은 20세기 하늘에서였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비행 기술이 급격히 발전하면서 조종사들은 높은 고도에서 쏟아지는 강렬한 햇빛과 자외선 때문에 극심한 두통과 눈의 피로를 호소했습니다. 1929년, 미 육군 항공대는 안경 제조업체였던 바슈롬(Bausch & Lomb)에 조종사들의 시력을 보호할 수 있는 전문 비행용 안경 개발을 의뢰합니다. 수년간의 연구 끝에, 1937년 마침내 자외선과 적외선을 효과적으로 차단하는 녹색 렌즈와, 인간의 눈 모양을 따라 넓은 시야를 확보해주는 눈물방울 모양의 디자인을 갖춘 '에비에이터(Aviator)' 모델이 탄생합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까지도 사랑받는 '레이밴(Ray-Ban)' 브랜드의 시작입니다. 저는 이 부분을 보며, 하나의 상징적인 디자인이 이처럼 극한의 환경에서 탄생한 완벽한 기능주의의 산물이라는 사실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3. 할리우드의 탄생, 선글라스가 신비감을 입다

군사적 목적으로 탄생한 기능적인 도구였던 선글라스가 어떻게 전 세계적인 패션 아이템이 될 수 있었을까요? 그 결정적인 무대는 바로 할리우드(Hollywood)였습니다. 20세기 중반, 영화 산업의 부흥과 함께 '스타'라는 새로운 존재가 탄생했습니다. 대중의 선망과 호기심을 한 몸에 받는 스타들에게, 선글라스는 두 가지 완벽한 도구가 되어주었습니다. 첫째, 당시 영화 촬영에 사용되던 강력한 아크 조명으로부터 자신의 눈을 보호하는 실용적인 기능이 있었습니다. 둘째,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파파라치의 카메라와 대중의 집요한 시선으로부터 자신의 사생활을 보호하고 신비로운 아우라를 만들어내는 상징적인 장치였습니다. 오드리 헵번, 제임스 딘, 톰 크루즈 등 수많은 영화배우들이 스크린 안과 밖에서 선글라스를 착용하면서, 선글라스는 더 이상 단순한 눈 보호 장비가 아닌, '쿨함'과 '스타성'을 상징하는 가장 강력한 패션 아이콘으로 격상되었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하나의 사물이 기술적 기능을 넘어 문화적 상징으로 거듭나는 과정에는 이처럼 대중 매체의 힘이 결정적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햇빛을 가리기 위해 선글라스를 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선글라스를 통해 스타들의 신비감과 자유로움을 '소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4. 시선의 권력, '보는 나'와 '보여지는 나'

다큐멘터리를 보고 난 후, 저는 제가 거울 앞에서 골랐던 선글라스를 다시 한번 바라보았습니다. 이제 선글라스는 우리 모두가 일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작은 무대 장치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선글라스를 통해 다른 사람의 시선을 차단하고, 그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보는 주체'로서의 편안함을 느낍니다. 동시에, 우리는 어두운 렌즈 뒤에 자신을 숨김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쉽게 규정되지 않는 신비로운 *'보여지는 객체'가 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선글라스는 '보는 나'와 '보여지는 나' 사이의 관계를 미묘하게 조율하며, 현대인의 복잡한 정체성을 표현하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판관의 권위적인 가면에서 시작하여, 비행사의 기능적인 도구를 거쳐, 마침내 스타의 신비로운 아우라를 완성하기까지. 선글라스의 역사는 인류가 어떻게 '시선'을 통제하고, 차단하며, 디자인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여정입니다. 여러분이 선글라스를 쓰는 순간, 여러분은 무엇을 보고, 또 무엇을 감추고 싶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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