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외출 준비를 하며 무심코 제 핸드백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지갑, 스마트폰, 립스틱, 차 키, 작은 수첩까지. 제 하루를 지탱해주는 작은 우주가 그 안에 있었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나는 이렇게 많은 것을 가방에 넣어 다니는데, 남편은 주머니에 지갑과 스마트폰만 넣고도 가뿐하게 외출할까?' 이 사소한 남녀의 차이가 궁금해져, 저는 패션의 사회사를 다룬 캐럴라인 콕스의 책 『패션의 역사(How to Read a Dress)』를 다시 펼쳐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핸드백이라는 존재가 단순히 물건을 담는 가방이 아니라, 수백 년간 남성에게만 허락되었던 '주머니'라는 특권에 맞서 탄생한, 여성들만의 '작은 요새'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부터 저의 이 작은 호기심에서 시작된, 핸드백의 위대한 역사를 함께 따라가 보겠습니다.
<목차>
1. 주머니 없는 여성, 보이지 않는 속박
책에 따르면, 핸드백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주머니의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17세기 이후, 남성복에는 옷 안쪽으로 재봉된 주머니가 생겨나며 남성들은 두 손의 자유와 함께 자신의 재산과 비밀을 담을 수 있는 사적인 공간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여성복은 정반대의 길을 걸었습니다. 당시 사회는 여성의 아름다운 실루엣을 망친다는 미학적 이유와, 여성이 독립적으로 소유할 만한 재산이나 공적인 활동이 없다는 사회적 편견을 들어 여성복에서 주머니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옷의 작은 디테일 하나가 얼마나 뿌리 깊은 성차별적 시선을 담고 있는지 깨닫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주머니를 빼앗긴 여성들은 여전히 허리끈에 매달아 풍성한 치마 아래에 숨기는 '독립형 주머니(tie-on pockets)'를 사용해야 했습니다. 이는 물건을 꺼낼 때마다 겉치마를 들춰야 하는 매우 불편하고 품위 없는 방식이었습니다. 주머니의 부재는 단순히 불편함을 넘어, 여성의 자유로운 활동과 경제적 독립을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속박이었습니다.
2. 레티큘의 등장, 손에 쥔 최초의 독립
이 수백 년간의 불편에 혁명을 가져온 것은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을 전후하여 유행한 새로운 패션이었습니다. 고대 그리스 스타일에서 영감을 받은, 몸에 딱 붙고 허리선이 높은 '엠파이어 실루엣'의 드레스가 등장하면서, 여성들은 더 이상 치마 아래에 부피가 큰 주머니를 숨길 공간이 없어졌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여성들은 마침내 자신의 소지품을 밖으로 꺼내 손에 쥐기 시작했습니다. 실크나 벨벳으로 만든 작은 그물 모양의 주머니, '레티큘(Reticule)'의 탄생입니다. 처음 레티큘이 등장했을 때, 보수적인 사회는 여성이 자신의 소지품을 '뻔뻔하게' 외부로 드러낸다며 비난했습니다. 하지만 이 작은 손가방은 여성사에서 거대한 도약이었습니다. 레티큘은 여성이 자신의 소유물을 스스로 통제하고, 공적인 공간에 드러내는 최초의 행위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며, 억압 속에서도 어떻게든 자신의 길을 찾아내는 여성들의 지혜와 용기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비록 크기는 작고 실용성은 떨어졌지만, 레티큘은 여성의 손에 쥔 최초의 독립 선언이자, 현대 핸드백의 직계 조상이 되었습니다.
3. 여행과 노동, 핸드백이 커지고 단단해지다
19세기 산업혁명은 핸드백의 역사에 또 다른 거대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철도 여행이 대중화되면서, 여성들은 이전보다 훨씬 더 먼 거리를 여행하게 되었고, 기차 안에서 읽을 책이나 간단한 화장품, 여벌의 장갑 등 더 많은 소지품을 휴대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이에 따라 기존의 작고 장식적인 레티큘보다 훨씬 더 크고 실용적인, 잠금장치가 달린 가죽 소재의 '핸드 헬드 백(Hand-held Bag)'이 등장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아는 핸드백의 직접적인 원형이었습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특히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은 핸드백을 여성의 필수품으로 만들었습니다. 남성들이 전쟁터로 떠난 자리를 여성들이 채우면서, 그들은 공장과 사무실에서 일하는 노동하는 여성이 되었습니다. 직장 여성들은 자신의 월급과 신분증, 집 열쇠 등을 직접 관리하고 휴대해야 했고, 이에 따라 더 크고, 칸이 나뉘어 있으며, 어깨에 맬 수 있는 실용적인 핸드백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핸드백은 더 이상 상류층의 장식품이 아닌, 모든 여성의 독립적인 사회생활을 위한 필수적인 도구가 된 것입니다.
4. 패션 아이콘에서 욕망의 상징으로
책을 덮고, 저는 제 핸드백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습니다. 20세기를 거치면서 핸드백은 실용적인 도구를 넘어, 여성의 정체성과 욕망을 담아내는 가장 강력한 패션 아이콘으로 진화했습니다. 에르메스의 '켈리백'이나 샤넬의 '2.55백'과 같은 디자이너 핸드백은 단순한 가방을 넘어, 그것을 소유한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취향, 그리고 경제력을 증명하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핸드백은 이제 옷이나 신발보다 더 강력하게 한 사람의 이미지를 규정하는 아이템이 되었고, '잇백(It Bag)'이라 불리는 특정 핸드백을 소유하기 위한 여성들의 열망은 거대한 산업을 만들어냈습니다. 남성에게만 허락되었던 주머니에 대한 반발로 시작된 작은 가방. 그 속에는 이처럼 여성의 독립을 향한 투쟁의 역사와, 시대를 초월하는 욕망의 코드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제 핸드백 속에는 저의 하루와 저의 세계가 담겨 있습니다. 여러분의 핸드백은, 오늘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나요?
왜 여성의 옷에는 주머니가 없었을까? 주머니가 말해주는 권력의 역사
남성복에는 당연하게 존재하는 주머니가 왜 유독 여성복에서는 찾아보기 힘들거나 '가짜'로 달려 있을까요? 단순한 디자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남성의 자유와 경제력을 상징하던 도구에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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