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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것들의 역사

군인의 속옷에서 자기표현의 캔버스로, 티셔츠의 반란

by handago-blog 2025. 8. 6.

얼마 전, 옷장을 정리하다가 가장 기본 아이템인 흰색 티셔츠 몇 장을 새로 꺼냈습니다. 청바지와 함께 입으면 그 자체로 편안하고 멋스러운 스타일이 완성되죠. 문득 이 지극히 평범한 티셔츠가 본래 땀 흘리는 군인들을 위한 보이지 않는 '속옷'이었고, 겉으로 드러내 입는 순간 기성세대에 대한 '반란'으로 여겨졌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이 흥미로운 역사를 더 깊이 파고들기 위해 저는 존 시브룩의 책 『패션의 탄생(Nobrow: The Culture of Marketing, the Marketing of Culture)』에서 대중문화와 패션의 관계에 대한 부분을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가 무심코 입는 이 하얀 면 조각이 어떻게 사회의 금기를 깨고, 한 시대의 저항 정신을 담아내며, 마침내 우리 모두의 생각과 개성을 표현하는 가장 강력한 '캔버스'가 되었는지 그 위대한 여정을 알게 되었습니다.

미 해군의 속옷

1. 보이지 않는 옷, 미 해군의 실용적인 속옷

책에 따르면, 티셔츠의 역사는 20세기 초, 뜨거운 엔진실과 갑판 위에서 땀 흘리던 미 해군(U.S. Navy)의 필요성에서 시작됩니다. 당시 선원들은 울로 된 두꺼운 유니폼 안에 단추가 달린 속옷을 입었는데, 이는 덥고 불편하며 땀 흡수도 잘되지 않았습니다. 1913년, 미 해군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볍고 신축성 좋은 흰색 면으로 만든, 단추 없는 크루넥(Crew-neck) 형태의 새로운 속옷을 공식 보급하기 시작했습니다. 양팔을 벌렸을 때의 모양이 알파벳 'T'를 닮았다고 해서 '티셔츠(T-shirt)'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 옷은 그야말로 혁신이었습니다. 입고 벗기 편하고, 땀을 잘 흡수하며, 세탁과 건조도 쉬웠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역사 속 위대한 발명품들이 종종 이처럼 거창한 철학이 아닌, 지극히 실용적인 필요에서 탄생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티셔츠는 오직 기능적인 목적을 위해 탄생한, 철저히 '보이지 않는 옷', 즉 속옷(Undershirt)이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수많은 미군 병사들이 이 편안한 속옷을 경험했고, 전쟁이 끝난 후에도 일상에서 티셔츠를 계속 입기 시작했습니다.

2. 속옷의 탈출, 노동자와 참전용사의 일상복이 되다

티셔츠가 속옷의 경계를 넘어 겉옷의 영역으로 서서히 탈출하기 시작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였습니다. 전쟁에서 돌아온 수백만 명의 참전용사(Veteran)들은 군대에서 입던 티셔츠의 편안함에 익숙해져 있었고, 이들은 더 이상 격식 있는 셔츠 아래에 티셔츠를 가두려 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주말이나 여가 시간에, 그들은 자연스럽게 티셔츠만 입고 정원을 가꾸거나 자동차를 수리했습니다. 이 모습은 잡지와 광고를 통해 퍼져나가며, 티셔츠는 점차 노동 계급의 소박하고 남성적인 매력을 상징하는 옷으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1934년 영화 <어느 날 밤에 생긴 일>에서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클라크 게이블이 셔츠를 벗었을 때 그 안에 속옷(티셔츠)을 입고 있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미국 전역의 남성 속옷 판매량이 급감했다는 유명한 일화는, 당시 티셔츠가 얼마나 확고한 '속옷'으로 인식되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줍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며, 하나의 옷이 '속옷'에서 '겉옷'으로 그 지위가 바뀌는 과정이 얼마나 큰 사회적 인식의 변화를 필요로 하는지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3. 제임스 딘의 반란, 티셔츠가 시대의 아이콘이 되다

티셔츠를 단순한 일상복에서 거부할 수 없는 '반항의 상징'으로 격상시킨 것은 1950년대 할리우드의 두 전설적인 배우였습니다. 1951년 영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말론 브란도는 땀에 젖어 몸에 착 달라붙는 흰색 티셔츠 차림으로 등장하여, 거칠고 원초적인 남성미와 반항적인 섹슈얼리티를 폭발시켰습니다. 찢어진 티셔츠 사이로 드러나는 그의 근육은, 이전까지 젠틀한 신사의 이미지에 갇혀 있던 남성성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습니다. 그리고 1955년, 제임스 딘은 영화 <이유 없는 반항>에서 청바지와 함께 입은 흰색 티셔츠를 통해, 기성세대의 가치관을 이해할 수 없는 청춘의 고독과 불안, 저항 정신을 완벽하게 표현해냈습니다. 그의 티셔츠는 더 이상 노동의 상징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이유 없이 방황하고, 기존 질서에 순응하기를 거부하는 새로운 세대의 유니폼이었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영화라는 대중문화가 어떻게 하나의 평범한 옷에 강력한 상징성을 부여하고 시대의 아이콘으로 만드는지 그 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기성세대는 티셔츠를 '불량함'의 상징으로 여겨 학교에서 착용을 금지했지만, 이러한 억압은 오히려 젊은이들의 열망을 더욱 부채질했습니다.

4. 자기표현의 캔버스, 모두의 목소리를 담다

책을 덮고, 저는 제 옷장 속 티셔츠들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습니다. 1960년대에 이르러, 티셔츠는 반항의 상징을 넘어 마침내 '자기표현의 캔버스'로 진화합니다. 실크스크린 인쇄 기술이 발전하면서, 사람들은 티셔츠 위에 자신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인쇄하기 시작했습니다.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평화의 메시지, 롤링 스톤즈와 같은 록 밴드의 로고, 앤디 워홀의 팝아트 작품, 그리고 기업들의 광고 로고까지. 티셔츠는 입는 사람의 정치적 신념, 음악적 취향, 예술적 감각, 그리고 소속감을 드러내는 가장 직접적이고 강력한 미디어가 되었습니다. 값비싼 옷이나 복잡한 격식 없이도, 누구나 티셔츠 한 장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는 진정한 '패션의 민주화'였습니다. 군인의 보이지 않는 속옷에서 시작하여, 노동자의 땀을 거쳐, 반항아의 저항 정신을 입고, 마침내 우리 모두의 개성을 담아내는 캔버스가 되기까지. 티셔츠의 역사는 가장 평범하고 단순한 옷이 어떻게 시대의 금기를 깨고, 세상과 소통하는 가장 자유로운 도구가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위대한 반란의 기록입니다. 여러분의 티셔츠는, 오늘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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