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소한것들의 역사

향신료 전쟁: 후추를 넘어, 클로브와 넛맥이 부른 피의 항해

by handago-blog 2025. 8. 5.

지난 이야기에서 우리는 '검은 황금' 후추가 어떻게 대항해시대의 문을 열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하지만 인류의 욕망을 불태우고 제국의 운명을 건 전쟁을 일으킨 향신료는 후추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후추보다 훨씬 더 희귀하고, 더 비쌌으며, 그 때문에 훨씬 더 잔혹한 피를 부른 두 개의 작은 열매가 있었습니다. 바로 달콤하고 알싸한 향의 클로브(Clove, 정향)넛맥(Nutmeg, 육두구)입니다. 어떻게 이 작은 향신료들이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같은 해상 제국들을 200년간의 끈질긴 전쟁으로 이끌고, 한 섬의 원주민들을 거의 전멸시키는 비극을 낳을 수 있었을까요? 지금부터 후추의 시대를 넘어, 세계사를 뒤흔든 진정한 향신료 전쟁의 역사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클로브

1. 지구상 단 하나의 파라다이스, 향료 제도의 비밀

책에 따르면, 클로브와 넛맥이 그토록 귀했던 이유는 단 하나, 그 원산지가 극도로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16세기까지 이 두 향신료는 지구상 단 한 곳, 오늘날 인도네시아 동부 말루쿠 제도에 속한 아주 작은 화산섬들, 즉 '향료 제도(Spice Islands)'에서만 자랐습니다. 클로브는 트르나테와 티도레 등 5개의 작은 섬에서만, 넛맥은 그보다 더 작은 반다 제도의 섬들에서만 독점적으로 생산되었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알고 나서, 이 작은 섬들이 당시 유럽인들에게 얼마나 신비롭고 탐나는 '보물섬'이었을지 상상해 보았습니다. 이 비밀스러운 '파라다이스'에서 수확된 향신료는 아랍과 베네치아 상인들의 손을 거치며 유럽에 도착했고, 그 과정에서 가격은 원산지의 수천 배로 치솟았습니다. 중세 유럽인들에게 클로브와 넛맥은 단순한 향신료가 아니었습니다. 강력한 방부 효과로 음식을 보존해주었고, 역병을 막아주는 신비한 약으로 여겨졌으며,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관능적인 향으로 최상류층의 부와 권력을 상징했습니다. 바로 이 지리적 희소성이, 유럽 제국들의 광기 어린 독점욕에 불을 지피는 가장 큰 원인이 되었습니다.

2. 포르투갈의 도착과 깨어진 평화

15세기 말, 바스코 다 가마가 인도로 가는 항로를 개척한 이후, 포르투갈은 이 향신료의 원산지를 직접 찾아내 독점하려는 야심에 불탔습니다. 마침내 1512년, 포르투갈 함대는 향료 제도에 도착한 최초의 유럽인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강력한 화포와 군사력으로 현지 술탄들을 위협하고, 요새를 건설하며 클로브와 넛맥 무역을 독점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포르투갈의 지배는 불완전했습니다. 그들은 제한된 인력으로 넓게 흩어진 섬들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었고, 현지인들의 저항과 다른 유럽 세력의 도전에 끊임없이 직면해야 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며, 최초의 침략자들이 어떻게 현지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갈등의 씨앗을 뿌렸는지 그 전형적인 패턴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목표는 현지 생산 체계를 파괴하기보다는, 기존의 무역망 위에 군림하여 이익을 취하는 것이었습니다. 향료 제도의 평화는 깨졌지만, 아직 최악의 비극은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3. 네덜란드의 광기, 동인도회사(VOC)의 잔혹한 독점

진정한 향신료 전쟁의 막을 올린 것은 17세기 초, 무섭게 성장하던 신흥 해상 강국 네덜란드였습니다. 1602년 설립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는 이전의 국가 주도형 탐험과는 차원이 다른, 주식 발행을 통해 막대한 자본을 모은 강력한 '기업 제국'이었습니다. VOC의 목표는 단순한 무역 독점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클로브와 넛맥의 생산 자체를 완벽하게 통제하여, 가격을 자신들 마음대로 조종하고 경쟁자를 완전히 제거하려 했습니다. VOC는 포르투갈을 무력으로 몰아내고 향료 제도를 장악한 뒤, 상상 이상으로 잔혹하고 체계적인 독점 정책을 펼쳤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통제하는 섬을 제외한 모든 곳의 클로브와 넛맥 나무를 베어버렸고, 원주민들이 몰래 묘목을 키우는 것을 막기 위해 수출하는 모든 넛맥 열매를 석회 가루에 담가 발아 능력을 없애버렸습니다. 이 광기가 절정에 달한 것은 1621년 반다 제도 대학살이었습니다. 영국과 몰래 거래했다는 이유로, VOC는 반다 제도의 원주민 15,000명 중 1,000명도 채 남기지 않고 거의 모두를 학살하거나 노예로 팔아버렸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인간의 이윤 추구가 얼마나 비인간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그 참혹함에 말을 잃었습니다.

4. 밀반출된 씨앗과 독점의 종말

책을 덮고, 저는 한동안 무거운 마음에 잠겨 있었습니다. 200년 가까이 이어진 네덜란드의 잔혹한 독점은, 한 용감한 프랑스인의 손에 의해 마침내 무너지게 됩니다. 18세기 후반, 프랑스의 식물학자이자 탐험가였던 피에르 푸아브르(Pierre Poivre)는 수차례의 잠입 시도 끝에, 마침내 향료 제도에서 클로브와 넛맥 묘목을 몰래 훔쳐 나오는 데 성공합니다. 그는 이 훔친 묘목들을 아프리카 동쪽의 프랑스령 식민지였던 모리셔스와 레위니옹 섬에 옮겨 심었고, 마침내 재배에 성공했습니다. 지구상 단 한 곳에서만 자라던 비밀의 나무는 이제 다른 곳에서도 뿌리를 내리게 된 것입니다. 이후 영국 역시 다른 지역에 향신료 재배를 성공시키면서, 네덜란드의 독점은 완전히 무너졌고 클로브와 넛맥의 가격은 폭락했습니다. 더 이상 황금과 맞바꿀 수 없는 평범한 향신료가 된 것입니다. 작은 열매를 향한 인간의 끝없는 욕망이 낳았던 향신료 전쟁. 그 피비린내 나는 역사는, 오늘날 우리가 마트에서 쉽게 손에 넣는 작은 향신료 한 병 속에 얼마나 거대하고 잔혹한 세계사가 담겨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주방 선반 위에는, 또 어떤 놀라운 세계사가 잠들어 있을까요?

 

황금보다 비쌌던 검은 알갱이, 후추가 대항해시대를 연 방법

식탁 위 작은 검은 알갱이, 후추가 한때 황금보다 비싼 '검은 황금'이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중세 유럽을 매혹시킨 향신료의 왕, 후추를 향한 열망이 어떻게 콜럼버스, 바스코 다 가마를 바다

handago.co.kr

 

눈에 보이지 않는 유한책임 괴물, 주식회사는 어떻게 탄생했나

피와 살이 없는 법적인 존재, 주식회사. 이 보이지 않는 괴물이 어떻게 개인의 책임을 제한하는 '유한책임'이라는 마법의 갑옷을 입고, 현대 자본주의의 가장 강력한 엔진이 되었을까요? 로마의

handag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