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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것들의 역사

부자의 과시품에서 남녀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작은 단추의 사회학

by handago-blog 2025. 7. 26.

오늘 아침, 늘 그렇듯 블라우스를 입으며 무심코 단추를 잠그다 문득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제 블라우스의 단추는 왼쪽에 달려있는데 남편의 셔츠 단추는 오른쪽에 달려 있었습니다. 너무나 익숙하고 사소한 이 행위 속에서, 우리는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거의 인지하지 못합니다. 바로 남성복의 단추는 오른쪽에, 여성복의 단추는 왼쪽에 달려있다는 점입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긴 것일까요? 단순히 우연의 일치일까요? 놀랍게도 이 작은 단추의 위치 차이 속에는 수백 년에 걸친 계급, 부, 그리고 성 역할에 대한 사회적 코드가 숨겨져 있습니다. 강민지 작가의 『패션의 탄생』의 한 부분을 떠올리며 책을 펼쳐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작은 단추의 위치 차이 속에 수백 년에 걸친 계급, 부, 그리고 성 역할에 대한 거대한 사회사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부터 저의 이 작은 발견에서 시작된, 단추의 놀라운 사회학적 여정을 함께 따라가 보려 합니다.

부자의 과시품에서 남녀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작은 단추

1. 잠그는 도구인가, 부의 과시품인가: 단추의 탄생과 계급

인류가 옷을 여미기 위해 사용한 도구의 역사는 매우 깁니다. 고대인들은 가시나 동물의 뼈, 작은 돌멩이를 사용해 옷을 고정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아는 형태의 '단추 구멍(Buttonhole)'을 가진 단추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3세기 독일에서였습니다. 이 혁신적인 발명은 옷의 역사에 혁명을 가져왔습니다. 이전까지 헐렁하게 걸치던 옷을 몸에 꼭 맞게 입을 수 있게 되면서, 인체의 곡선을 드러내는 새로운 패션이 가능해진 것입니다. 하지만 초기의 단추는 기능적인 목적보다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는 사치품의 성격이 훨씬 강했습니다. 단추는 금, 은, 상아, 보석 등 값비싼 재료로 만들어졌고, 부유한 귀족들은 자신의 부와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일부러 옷에 수십, 수백 개의 화려한 단추를 달았습니다.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는 자신의 검은 벨벳 의상에 13,600개의 금단추를 달아 입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입니다. 이 시대에 단추는 옷을 잠그는 도구가 아니라, 입는 사람의 계급을 말해주는 가장 확실한 신분증이었습니다. 가난한 평민들은 값비싼 단추 대신 끈이나 천으로 만든 고리를 사용해야 했고, 단추의 개수와 재질만으로도 그 사람이 어떤 계층에 속하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습니다.

2. 오른손과 왼손의 비밀: 남녀 단추 방향은 왜 다른가?

그렇다면 저의 궁금증의 시작이었던, 왜 남성복 단추는 오른쪽에, 여성복 단추는 왼쪽에 달리게 되었을까요? 여기에는 여러 가지 가설이 있지만,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은 당시의 사회 구조와 성 역할에서 비롯됩니다. 남성복 단추가 오른쪽에 달린 것은 실용적인 이유가 컸습니다. 중세 이후 남성 귀족이나 기사들은 칼을 차고 다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오른손잡이가 대부분이었던 시절, 칼은 주로 왼쪽 허리에 차고 오른손으로 뽑았습니다. 이때 옷의 여밈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덮이는 방식(단추가 오른쪽에 있는 방식)이어야 칼을 뽑을 때 옷자락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또한 스스로 옷을 입는 남성들이 오른손으로 단추를 채우기 편했다는 설명도 있습니다. 반면, 여성복 단추가 왼쪽에 달린 것은 정반대의 이유에서였습니다. 당시 상류층 여성들은 혼자서 옷을 입지 않았습니다. 코르셋과 수많은 속치마, 드레스 등 복잡한 구조의 옷을 입기 위해서는 시녀나 하녀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시녀가 귀부인의 옷을 입힐 때, 마주 선 상태에서 오른손을 사용해 단추를 잠그기 편하도록 단추를 왼쪽에 달았다는 것입니다. 즉, 남성복 단추는 '스스로' 입는 실용성을, 여성복 단추는 '누군가 입혀준다'는 특권층의 과시를 상징했던 셈입니다. 결국 이 사소한 단추의 위치 차이는 '남성은 활동적이고, 여성은 수동적'이라는 당시의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과 계급적 차이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산업혁명과 단추의 민주화

수백 년간 귀족의 전유물이었던 단추는 18세기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거대한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기계의 발달로 금속, 뼈, 나무, 심지어 유리와 도자기로 만든 단추를 저렴한 가격에 대량 생산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더 이상 부자들만이 단추를 독점할 수 없게 되자, 단추는 점차 부의 상징에서 실용적인 기능으로 그 무게 중심을 옮겨갔습니다. 중산층과 노동자 계층도 자신의 옷에 단추를 달 수 있게 되면서, 단추는 비로소 모든 사람을 위한 '패션의 민주화'를 이끈 작은 영웅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단추 자체는 대중화되었지만 '남성은 오른쪽, 여성은 왼쪽'이라는 단추의 위치 규칙은 그대로 유지되었습니다. 상류층 여성들이 더 이상 하녀의 도움 없이 스스로 옷을 입게 되었음에도, 기성복 산업은 과거의 전통을 그대로 답습하여 옷을 생산했기 때문입니다. 이미 굳어진 관습을 바꾸는 데 드는 사회적 비용과 혼란을 피하고자 했던 생산의 편의성이, 과거의 성 역할 구분을 21세기까지 이어지게 만든 것입니다.

4. 현대 패션 속 단추의 의미: 전통과 개성의 공존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단추는 과거의 모든 역사를 품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단추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기능적인 부품이지만, 고급 맞춤 정장이나 명품 브랜드의 의상에는 여전히 자개나 동물의 뿔, 귀금속으로 만든 비싼 단추가 사용되며 은은한 권위를 드러냅니다. 남녀의 단추 방향 규칙은 대부분의 기성복에서 여전히 지켜지고 있지만, 최근 유니섹스 패션이나 젠더리스 트렌드가 확산되면서 이러한 전통적인 규칙을 의도적으로 파괴하거나 혼용하는 디자인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는 단추가 단순히 옷을 여미는 기능을 넘어, 디자이너의 철학을 담고 입는 사람의 개성을 표현하는 상징적인 요소로 여전히 살아있음을 보여줍니다. 매일 아침 무심코 채우던 작은 단추 하나. 그 안에는 부를 과시하던 욕망의 역사, 남녀의 역할을 구분 짓던 사회적 시선, 그리고 시대를 넘어 이어져 온 관습의 힘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작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단추의 사회학입니다. 여러분의 옷에 달린 단추는, 오늘 여러분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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