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주방 선반에서 너무나도 쉽게 참치 캔을 꺼내고, 명절 선물로 들어온 스팸 캔을 따며, 복숭아 통조림의 달콤함을 즐깁니다. 이 금속 용기 안에 담긴 음식, 통조림은 우리에게 비상식량이자 간편식의 대명사입니다. 하지만 만약 이 평범한 깡통이, 유럽을 정복하려 했던 한 황제의 야망에서 탄생한 최첨단 군사 기술이었고, 인류가 지구의 마지막 미개척지를 탐험할 수 있게 해준 결정적인 열쇠였다면 어떨까요? 어떻게 이 단순한 식품 보존 기술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고, 인류의 활동 반경을 극적으로 넓힐 수 있었을까요? 군사 보급의 역사를 다룬 한 다큐멘터리에서 소개한 나폴레옹의 현상금에서 시작하여, 인류의 식탁을 영원히 바꿔놓은 통조림의 위대한 역사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1. 괴혈병의 공포와 나폴레옹의 위대한 현상금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통조림이 발명되기 전 인류에게 장기 식품 보존은 풀지 못한 숙제였습니다. 특히 수만, 수십만 명의 대군을 이끌고 장기간 원정을 떠나야 했던 군대에게 식량 문제는 승패를 좌우하는 가장 큰 골칫거리였습니다. 소금에 절이거나 말린 고기와 딱딱한 건빵이 주식이었지만, 이는 심각한 영양 불균형을 초래했습니다. 특히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섭취하지 못해 비타민 C가 부족해지면서 발생하는 괴혈병(Scurvy)은 군인과 선원들을 괴롭히는 가장 무서운 적이었습니다. 잇몸에서 피가 나고, 상처가 낫지 않으며, 결국에는 죽음에 이르는 이 끔찍한 질병은, 가장 강력한 군대조차 무력하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현대의 우리가 영양제 한 알로 쉽게 해결하는 문제가 과거에는 제국의 운명을 좌우할 만큼 심각했다는 사실에 아찔함을 느꼈습니다. 18세기 말, 유럽을 제패하려는 야망에 불타던 프랑스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795년 '계절에 상관없이 식품을 대량으로 장기간 보존할 수 있는 혁신적인 방법'을 발명하는 사람에게 12,000프랑이라는 거액의 현상금을 내걸었습니다.
2. 한 요리사의 집념, 니콜라 아페르와 병조림의 탄생
나폴레옹의 현상금에 도전한 수많은 과학자와 발명가들 사이에서, 최종 승자가 된 인물은 의외로 파리의 평범한 요리사이자 제과업자였던 니콜라 아페르(Nicolas Appert)였습니다. 그는 과학자가 아니었지만, 수년간의 끈질긴 실험과 관찰을 통해 위대한 발견을 해냅니다. 그는 음식을 두꺼운 유리병에 넣고, 코르크 마개로 단단히 밀봉한 뒤, 이 병을 끓는 물에 넣고 장시간 가열하면 음식이 상하지 않고 오랫동안 보존된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이것이 바로 병조림, 즉 통조림의 원형인 '아페르법(Appertization)'의 탄생입니다. 저는 이 부분을 보며, 위대한 혁신이 때로는 전문 과학자가 아닌,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한 개인의 집요한 관찰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아페르는 왜 음식이 썩지 않는지에 대한 과학적인 원리는 알지 못했지만, 경험적으로 현대 식품 보존의 핵심 원리인 '열처리 살균'을 발견한 것입니다. 15년간의 연구 끝에, 그는 1810년 마침내 나폴레옹이 내건 현상금의 주인공이 되었고, 그의 병조림은 프랑스 해군에게 공급되어 선원들을 괴롭히던 괴혈병을 크게 줄이는 데 기여했습니다.
3. 영국의 개량, 깡통(Tin Can)의 등장과 탐험의 시대
아페르의 혁명적인 아이디어는 바다 건너 영국으로 전해져 결정적인 발전을 이루게 됩니다. 1810년, 영국의 상인 피터 듀란드(Peter Durand)는 깨지기 쉬운 유리병 대신, 주석을 도금한 얇은 철판, 즉 양철(Tinplate)로 만든 원통형 용기를 사용하는 아이디어에 대한 특허를 냅니다. 바로 '깡통(Tin Can)'의 탄생입니다. 깡통은 유리병보다 훨씬 가볍고 튼튼했으며, 대량 생산에도 용이했습니다. 하지만 초기의 통조림은 여전히 불편한 물건이었습니다. 깡통을 여는 '캔따개(Can Opener)'가 아직 발명되기 전이라, 통조림에는 "끌과 망치를 이용해 윗부분을 뜯어내시오"라는 무시무시한 안내문이 적혀 있었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웃음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완벽한 보존 용기를 만들었지만, 그것을 열 방법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인류의 순진함이 엿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불편한 깡통은 인류의 활동 영역을 넓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북극과 남극을 탐험하던 극지 탐험가들에게 통조림은 생명줄과도 같았습니다. 통조림은 인류가 지구의 마지막 미지의 땅을 정복할 수 있게 해준 가장 믿음직한 동반자였습니다.
4. 전쟁의 아들, 현대인의 식탁을 정복하다
다큐멘터리를 보고 난 후, 저는 제 주방에 있는 참치 캔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습니다. 군사적 필요와 탐험의 동반자로 태어난 통조림은 19세기 중반 미국 남북전쟁을 거치면서 대량 생산 체제를 갖추게 되었고, 마침내 일반 대중의 식탁으로 그 영역을 넓히기 시작했습니다. 캔따개의 발명과 자동화된 생산 공정의 도입은 통조림의 가격을 크게 낮추었고, 더 이상 부유층이나 군인, 탐험가만의 전유물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통조림은 계절과 지역에 상관없이 언제 어디서든 다양한 식재료를 맛볼 수 있게 해주었고, 이는 인류의 식생활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도시의 노동자들은 저렴하고 간편한 통조림으로 끼니를 해결할 수 있었고, 주부들은 음식 준비에 드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었습니다. 제가 무심코 딴 통조림 깡통 하나에, 이처럼 인류의 생존과 욕망, 그리고 문명의 발전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더 이상 평범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주방 선반 위에는, 또 어떤 놀라운 이야기가 숨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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