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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것들의 역사

썩은 우유의 위대한 변신, 치즈는 어떻게 각 지역의 자부심이 되었나

by handago-blog 2025. 8. 2.

까망베르, 고르곤졸라, 체더, 그뤼에르... 이름만 들어도 깊은 풍미와 함께 와인 한 잔이 떠오르는 음식, 바로 치즈(Cheese)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치즈는 전 세계 각 지역의 독특한 맛과 문화를 담고 있는 세련되고 다채로운 미식의 상징입니다. 하지만 만약 이 고상한 음식의 기원이, 썩기 직전의 우유를 어떻게든 먹어보려 했던 고대인들의 절박한 생존 기술에서 비롯되었다면 어떨까요? 어떻게 이 '썩은 우유' 덩어리가 수천 년의 시간을 거치며 각 지역의 기후와 풍토, 그리고 장인의 자부심이 담긴 예술품으로 거듭날 수 있었을까요?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 저는 폴 S. 킨스테드의 명저 『치즈와 문화(Cheese and Culture)』를 펼쳐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가 알던 치즈의 세계가 얼마나 피상적이었는지 깨닫고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제가 예술품처럼 감상하던 이 치즈가, 사실은 상한 우유를 어떻게든 먹어보려 했던 고대인의 절박한 생존 기술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지금부터 인류 최초의 가공식품 중 하나인 치즈가 어떻게 각 지역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자랑거리가 되었는지, 그 위대한 변신의 역사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썩은 우유의 위대한 변신, 치즈

1. 우연한 발견, 인류 최초의 가공식품

책에 따르면, 치즈의 탄생은 계획된 발명이 아닌, 우연한 발견의 산물이었습니다. 약 1만 년 전, 인류가 처음으로 양과 염소를 가축으로 기르기 시작했을 때, 가장 큰 고민은 넘쳐나는 우유를 어떻게 보관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액체 상태의 우유는 상온에서 너무나도 빨리 상해버리는 골칫거리였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한 고대 유목민이 동물의 위장으로 만든 물통에 우유를 담아 사막을 건너고 있었습니다. 몇 시간 뒤 목을 축이기 위해 물통을 열었을 때, 우유는 출렁이는 움직임과 위장에 남아있던 레닛(Rennet)이라는 효소의 작용으로 인해 묽은 액체(유청)와 하얀 덩어리(커드)로 분리되어 있었습니다. 유목민은 조심스럽게 그 덩어리를 맛보았고, 시큼하지만 먹을 만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류 최초의 치즈였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인류의 위대한 발전이 종종 이처럼 절박한 필요와 우연한 행운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에 경외감을 느꼈습니다. 치즈는 썩기 쉬운 액체였던 우유를, 영양가가 풍부하고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으며, 운반하기도 쉬운 고체 형태로 바꿀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이었습니다. 치즈는 인류 최초의 가공식품이자 보존식품이었던 셈입니다.

2. 수도원의 실험실, 유럽 치즈의 다양성이 꽃피다

고대를 거쳐 중세 시대에 이르러, 치즈 제조 기술은 뜻밖의 장소에서 체계적으로 발전하고 보존됩니다. 바로 유럽 전역에 흩어져 있던 수도원입니다. 서로마 제국 멸망 이후의 혼란기 속에서, 수도원은 학문과 기술을 보존하는 유일한 보루였습니다. 글을 읽고 쓸 줄 알았던 수도사들은 시행착오를 통해 얻은 치즈 제조법을 꼼꼼하게 기록하고, 다음 세대로 전수했습니다. 또한, 수도원은 외부 세계와 단절된 채 자급자족 생활을 했기 때문에, 안정적인 환경에서 오랜 시간 숙성이 필요한 치즈를 만들기에 최적의 장소였습니다. 바로 이 수도원의 '실험실'에서 오늘날 우리가 아는 유럽 치즈의 위대한 다양성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프랑스 루에르그 지방의 동굴에서 푸른곰팡이를 이용해 숙성시킨 로크포르(Roquefort), 이탈리아 파르마 지역의 베네딕토회 수도사들이 만들어낸 단단하고 풍미 깊은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Parmigiano-Reggiano) 등, 각 지역의 수도사들은 그곳에서만 구할 수 있는 독특한 기후와 풍토, 그리고 미생물을 이용해 저마다 고유한 맛과 향을 지닌 치즈를 탄생시켰습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며, 신을 향한 경건한 공간이 어떻게 가장 창의적인 미식의 산실이 될 수 있었는지 그 아이러니에 감탄했습니다. 이때부터 치즈는 그 지역의 '테루아르(Terroir)', 즉 땅과 자연환경이 고스란히 담긴 지역의 특산품이자 자부심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3. 산업화와 명품화, 치즈가 세계를 정복하다

19세기 산업혁명은 치즈의 역사에 또 다른 거대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루이 파스퇴르가 저온 살균법을 발명하면서, 우유를 안전하고 일관된 품질로 관리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치즈의 대량 생산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공장에서 만들어진 규격화된 치즈는 저렴한 가격으로 전 세계에 퍼져나가며 치즈의 대중화를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러한 산업화는 전통적인 수제 치즈(Artisanal Cheese)의 가치를 더욱 부각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공장제 치즈의 획일적인 맛에 싫증을 느끼고, 수백 년간 이어져 온 각 지역만의 독특하고 깊은 풍미를 지닌 치즈를 다시 찾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등 유럽 국가들은 자신들의 소중한 음식 유산을 보호하기 위해 엄격한 원산지 명칭 보호 제도(AOC, DOP 등)를 만듭니다. '까망베르'라는 이름은 오직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에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만든 치즈에만 사용할 수 있도록 법으로 규정한 것입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획일화의 시대 속에서도 자신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지키려는 인간의 노력이 얼마나 위대한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제도는 치즈의 이름에 그 지역의 역사와 정통성, 그리고 품질을 보증하는 '명품'의 지위를 부여했습니다.

4. 썩은 우유에서 문화의 상징으로

책을 덮고, 저는 식탁 위에 남은 치즈 조각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습니다. 고대 유목민의 가죽 부대 속에서 우연히 태어난 하얀 덩어리. 생존을 위한 절박함에서 시작된 이 '썩은 우유'는 중세 수도사의 꼼꼼한 기록과 실험을 거쳐 수백 가지의 얼굴을 가진 예술품으로, 그리고 산업화의 파도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노력을 통해 마침내 한 지역의 떼려야 뗄 수 없는 자부심으로 거듭났습니다. 이제 저는 치즈 한 조각을 입에 넣을 때, 단지 발효된 우유 덩어리를 먹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저는 그 지역의 푸른 초원과 맑은 공기, 수백 년간 이어져 온 장인의 땀과 자부심,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위대한 역사의 한 조각을 맛보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식탁 위 치즈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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